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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 나는 참배객 없는 사원의 종지기

[그의 삶 그의 꿈] 나는 참배객 없는 사원의 종지기

입력 2011-05-01 00:00
업데이트 2011-05-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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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

국립극단이 달라졌다. 올초(1월 20~2월 13일) 공연한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가 대성황을 이룬 것이다. 총 관람객 8,800명, 유료점유율 78%, 수입은 1억 원을 넘겼다. 공연 비수기에 다소 무거운 비극을 무대에 올렸지만 연일 매진 행렬은 이어졌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지난해 국립극장 전속단체에서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손진책 씨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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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연애가 되고 성찰이 되고 미래가 되게

만나러 가기 전날 국립극단 홈페이지를 찾았다. 예술감독을 소개하는 난에 이렇게 써 있었다.

“국민들에게 연극을 개방하여 스스로를 선물처럼 돌려주려고 합니다. 연극이 연애가 되고, 성찰이 되고, 미래가 되는 것이 국립극단의 목표입니다.”

가슴이 뛰는 말이다. ‘연극이 연애가 되고 성찰이 되고 미래가 된다!’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가슴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듣게 되는 말이다.

국립극단은 서울역 뒤쪽 서부역에서 나오면 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지붕이 온통 빨간, 그냥 빨강이 아닌 연극인의 정열을 닮은 진한 빨강, 색깔이 뭔가 말하고 있는 듯한 그런 건물이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손진책 감독은 극단직원들과 선 채로 얘기하고 있었다. 현장감독의 분위기 그대로가 느껴졌다. 손수 끓여주는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곧바로 ‘연극이 연애가 되고 성찰이 되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물어봤다.

“글자 그대롭니다. 연극이란 것이 사회적인 경험을 중시합니다. 관객들이 연극을 접하면서 삶을 창조적이고 풍요롭게 살고 내일을 새롭게 사는 출발점으로 삼게 된다면 하는 바람에서, 즉 연극이 행동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면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연기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설렘이 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삶의 새로운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연극, 그것이 손진책 감독이 생각하는 연극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성공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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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체질 개선했더니 관객 몰려

국립극단이 부활하기 위해서 손 감독은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다. 월급 받는 배우 23명을 없애고 작품별로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았다. ‘내 몸 다 바칠 테니 쓰시오’ 하는 배우들로 배역을 정했다. 과거와 같은 짬밥순이 아니었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프리뷰 공연을 두 번 올렸다. 개막 9일 전부터 실제무대에서 연습했고 홍보비도 3~4배 올렸다. 관객들은 귀신같이 좋은 연극을 알아봤다.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손진책 감독에게 직접 달라진 면모를 듣고 싶었다.

“그전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을 찾아가서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평생 연극을 안 본 사람에게도 저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연극은 아날로그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을 안 봐도 내 삶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연극인의 직무유기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내 삶을 깨달을 수 있게 한다면, 그래서 연극이 내 삶에 바람결처럼 항상 스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연극을 대하고 있습니다.”

시인들 사이에서만 인정받는 시집이 우스꽝스럽듯이, 연극인들 사이에서만 평가받는 연극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손진책 감독은 사람들에게 연극을 돌려주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달라진 점은 고정된 월급을 받는 단원 대신 작품별로 오디션을 통해 연출자가 선발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번 공연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레퍼토리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의상이나 세트 등 경제적인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공연에 대한 세부사항을 기록해서 남기고, 연극을 위한 웍샵프로젝트도 상시 운영하려고 합니다.”

연극계에서는 손진책 감독의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맡은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연극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행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잘 생긴 바위 같다.

국립극단은 서부역 쪽으로 이사오면서 극장을 두 개 만들었다. 현존하는 원로배우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소극장 판. 이곳에서 3월 11일부터 국립극단 봄마당 연극 축제를 시작하고 있는데 <3월의 눈> <주인이 오셨다> <황혼의 시> 등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국립극단의 새로운 면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은 꼭 가보기를 권한다.

앞으로는 연극뿐만이 아닌 무용이나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다원예술에도 문호를 개방하여 국립극단을 찾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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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영혼을 바친 수줍은 소년

마당놀이의 창시자로서 30년 동안 마당놀이를 이끈 장본인에게 마당놀이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마당놀이 삼총사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가 고별공연을 했다는데 올 연말 공연은 어떻게 되는가 물어봤다.

“30년 되면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만든 사람으로서 마당놀이가 자리를 잡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배들이 새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제2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물러났습니다. 세 사람이 출연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낄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새로운 길을 터주는 의미에서 시대는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극단 미추의 후배들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쉬울 법도 한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한다. 그런 모습이 마치 노불(老佛)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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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클래식 마니아다. 브람스나 쇼팽 등 고전음악도 좋아하고 국악도 좋아한다. 가곡 <명태>를 즐겨 부르고 ‘범피중류’(판소리 심청가 가운데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가라앉지 않고 떠내려갈 때 주위의 경치를 읊은 대목)를 좋아한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작년 여름 3개월 간 술 고기 안 먹고 밤에 약속을 없앴더니 10킬로그램이 빠졌다고 한다.

즐겨 읽는 책을 묻자, 작품 개발하느라 희곡 작품 읽기도 바빠 다른 책 읽을 틈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평소에 불경 읽기는 좋아한다고 한다. 육조단경에 나오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쓰라(應無所住而生基心)’는 구절을 자주 생각한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없애는 것’‘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그의 화두다.

연극하겠다는 후배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연극을 즐기는 것으로 해라.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배객 없는 사원의 종지기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는 정말 수도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에 영혼을 바친 수줍은 소년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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