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프리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입력 : ㅣ 수정 : 2011-02-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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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쿨한 이별? 그들의 마지막 3시간
한때 남녀 사이에 ‘쿨하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관계를 나타낼 때 쓰인 말. 쿨한 연애, 쿨한 이별은 종종 멋지고 세련된 사랑 방식으로 인식되곤 했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그(현빈)와 그녀(임수정)도 겉으로 보기엔 참 ‘쿨한’ 커플이다.

어느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하는 아내. 그런 갑작스러운 아내의 말에 미동조차 하지 않고 운전에만 몰두하는 남편. 하지만 결혼 5년 차에 이별을 결심한 이들의 속내는 그렇게 쿨하거나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녀가 떠나기로 한 날, 늦은 오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의 약 3시간 동안 남녀의 일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부부의 이별 풍경을 담은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어떤 극적인 장치나 여과 과정 없이 덤덤하게 그들의 모습을 뒤쫓는다.

각자 인생의 큰 고비에서 마주 서게 된 그들. 마음속은 이미 피 말리는 전쟁터 같지만, 혹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떤 말이나 행동도 쉽사리 표현할 수 없다. 이처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녀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이해하고 따라가야 하는 영화다.

짐 싸는 그녀를 돕기 위해 아끼는 찻잔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주고, 맛있는 커피를 묵묵히 내려 주는 그 남자. 그녀에게 걸려온 새 남자의 전화를 말 없이 건네주는 그는 지나치게 소심한 걸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걸까.

이처럼 팽팽하게 흘러가던 감정의 흐름을 먼저 깬 것은 그녀다. 단 한번도 상대가 누구냐고 묻지 않고 마지막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편의 답답함에 화가 치민 그녀는 마침내 그의 가슴을 치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이별의 원인 제공자임을 깨닫고 다시 잠잠해진다.

전작 ‘여자, 정혜’(2005), ‘멋진 하루’(2008) 등에서 섬세하고 사실주의적인 연출 방식으로 호평을 받은 이윤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별을 앞둔 남녀의 미묘한 내면 심리를 절제된 시선으로 그려냈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비치는 맑은 햇살과 바람,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앵글로 엇갈린 남녀의 심리를 잡아내는 등 색다른 영화적 기법을 시도했다.

입대 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이 영화에서 현빈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는 상반된 인물을 연기한다. 얼굴 전체를 가릴 것 같은 긴 머리처럼 어깨의 힘은 쏙 빼고 한층 담백해진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현빈은 “‘시크릿가든’의 주원을 생각하신다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봐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독일 베를린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은 임수정의 연기도 몰입하기에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만 롱테이크(길게 찍기)가 많은 특성상 내면에서 끌어올린 배우들의 감정이 적극적으로 객석에 전달되지 않는 단점은 있다. 전반적으로 밋밋하기는 하지만, 꽤 잔상이 오래 남고 이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 다음 달 3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11-02-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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