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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vs 놀이 | 할아버지 악단] ‘나이야, 가라~’ 우리는 할아버지 연주악단

[일 vs 놀이 | 할아버지 악단] ‘나이야, 가라~’ 우리는 할아버지 연주악단

입력 2011-01-16 00:00
업데이트 2011-01-1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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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능(三能)실버밴드

부산시 서구 부산대학병원 근처 주택가. 어디선가 밴드 음악이 구성지게 들려온다. 우리 가요 <나그네 설움>이다. 음악이 들리는 곳 문을 여니, 너덧 평 공간에 음악소리가 풍성하다. 이곳은 삼능(三能)실버밴드의 연주실을 겸한 사무실. 한 벽에 만돌린, 기타 등 여러 악기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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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노신사 일고여덟 명이 모여 밴드 연주가 한창이다. 베이스의 굵은 음폭에, 아코디언, 오르간이 멜로디를 덧칠하고, 만돌린과 하모니카가 뒤를 받쳐주면서… 각 악기들이 서로 어우러져 화음을 맞추고 하나의 거방한 음악이 된다.

연주에 맞춰 한 노신사가 애수 어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세월의 희로애락이 곡의 행간마다 절절하게 스며들고 녹아든다. 곡과 곡 사이 간주의 넘나듦도 예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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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추억의 소야곡> 함 해봐라.” 이 노래에 저 노래를 받아서 또 다른 노신사가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촉촉하고 애잔하게 젖었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음역을 차고 나감이 자유롭다. 무대 매너도, 바이브레이션도 이미 잘하고 못함을 넘어섰다.

삼능(三能)실버밴드. 부산 유일의 노인 연주전문가 밴드. 평균 연령이 70세를 웃도는 ‘오래(?)된 오빠밴드’다. 삼능(三能)은 3가지가 능하다는 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잘 다루고, 한문 실력이 능하며, 외국어 1개 국어 이상 능하게 구사해야 회원가입이 허락된다는 뜻. 말 그대로 ‘프로다워야 한다’는 그들만의 자긍심이 배어 있다.

대부분 연주활동이 30~50년씩은 된 연주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주활동으로 부산에서는 인정받는 프로페셔널 밴드다. 1980년 창단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중견 악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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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곡 연이은 연주에 서로 흥이 오르고 몸이 뜨거워진다. “<경상도 아가씨> 함 해보까?” “오케이!” 모두들 신명이 났다. 어깨를 들썩이고 발바닥 장단이 절로 맞춰진다. 이미 연주는 악기가 아니라 그들 몸에서 저절로 발성되고 있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전주가 이렇게도 웅장했던가? 새삼스러워진다. 아코디언 멜로디가 그윽하고 하모니카 소리는 아련하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이미 음계를 넘나들며 좁은 연주실을 풍성하게 채우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별의 정거장>에 이르니 흥의 정점, ‘뚜뚜따따’ 손나팔 전주가 나오고, 왁자한 선술집의 젓가락장단도 연주 속으로 어우러진다. 만돌린의 ‘도도도’거림도 가슴 한쪽을 가볍게 울려준다.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노신사들의 만면에 환한 미소가 돌고 홍조가 핀다. 어디서 이런 흥이 오르는 것일까? 이미 한 갑자를 훌쩍 넘긴 나이들이 말이다.

앞서 말했듯 이들의 평균 연령은 일흔을 훌쩍 뛰어넘는다. 밴드의 최연장자 김광식 어른이 현재 87세에 이른다. 그 나이에도 정정하게 피아노와 기타를 맡고 있다. 만돌린 주자인 삼능실버밴드 이만석 회장은 80세, 하모니카와 보컬을 맡고 있는 정이언 악단장은 79세, 베이시스트 김영수 77세, 가수 정일균 75세, 아코디언 정구식 73세, 가수이자 작사가 홍기표 72세, 만돌린 김소 70세 등 주력멤버들이 70세가 넘는다.

그 뒤로 막내(?) 격인 오르간 김석수 68세, 만돌린 장재선 67세, 기타리스트 정영화 60세 등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70세가 넘지 않으면 나이 자랑(?)마저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나이를 잊고 사는 청추(靑秋), 열정과 끼가 흘러넘치는 노익장의 그들이다.

함께 동행했던 원로화백 주경업 선생의 손길도 바쁘다. 그의 스케치북에서는 노신사들의 연주 모습이 그림으로 한껏 살아 오르고 있었다. 그림 안에서 아코디언, 만돌린 등의 음계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의 환상적인 조화로움. ‘연주 속 음악’과 ‘그림 속 음악’이 서로 손을 잡고 덩실덩실 어울린다.

“기자양반도 한 곡 해보소.” 떠밀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머뭇거리다가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신청하니 바로 “안다성 노래?” “좋~지” “자~ 에이 마이너(A-)” 곧 음악이 흐르고, 그 연주에 노래가 숨 가쁘게 따라간다. 그러나 잠시 후 웬걸, 어느새 연주가 노래를 따르며 편안하게 받쳐주고 있다.

이러구러 10여 곡이 물 흐르듯 허공을 떠돈다. “한 곡 더 하입시다.” 70세 젊은이(?)가 계속 외친다. ‘그만 하자’던 선배들도 그 어리광(?)에 서너 곡 더 연주하고 나서야 악기를 거둔다. 대단들 하시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 막걸리가 한 순배 돌고, 왁자하게 그들의 음악인생이 펼쳐지고, 인생의 절정기 시대를 ‘내가 왕년에~’라는 자랑거리들로 얼큰하게 쏟아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전통가요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진다.

“사실 우리 연주의 목적 중 하나가 우리 가요의 연주 및 보급입니다. 전통가요를 등한시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우리라도 놓지 말고 연주하고 부르자는 취지였죠.(이만석 회장)” “우려스러운 건 전통가요의 정통성을 지켜야 할 가수들조차 우리 가요를 변질시키고 있어요. 전통창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요.(정일균)” “그래서 우리 한국 가요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하자는 데 뜻을 두고 연주하고 있지요.(홍기표)”

우리 민족의 삶을 반영하고 애환을 다독여주는 전통가요. 그들은 우리 전통가요에 한없는 애정을 보내고 있었다. 한 곡 한 곡 연주할 때마다 그 흥에 젖고 그 가사에 몰입한다. 기쁠 땐 웃고 슬플 땐 우는 그 담담하면서도 소박한 음악이 우리 전통가요라는 것이다.

“가사도 얼마나 주옥같아요? 우리의 정서와 애환이 굽이굽이 절절하게 묻어 있잖아요.(김영수)” “그 가사를 따라 연주를 하다보면 우리네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 보입니다.(김소)”

환한 그들의 얼굴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난다. 모든 것 다 얻은 후의 여유가 묻어 있다. 음악과 우정과 즐거움이 있는 그들만의 연주회. 삶의 외로움, 애환은 애당초 잊었다. 주경업 화백이 초대 손님 대표로 노래 한 곡조 뽑는다. “운다고 내 사랑이 오리요~마는~” 참 구성지다. 이 어른들 사나이 가슴을 울린다. 코끝이 찡~해진다.

글_ 최원준 기획위원·사진 김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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