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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자연을 닮은 그늘집, 정자] 다섯 벗을 곁에 두고…차 우리고, 풍류를 맛보는

[그늘 | 자연을 닮은 그늘집, 정자] 다섯 벗을 곁에 두고…차 우리고, 풍류를 맛보는

입력 2010-08-29 00:00
업데이트 2010-08-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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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의 작은 선착장. ‘일상’과 ‘일탈’의 갈림길 위에서 사람들은 배에 오른다. 보길도를 향하는 뱃길, 선실 한쪽에서는 거나하게 취한 여객들의 노랫가락 소리 흥겹고, 선실 밖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이들은 수평선 끝, 한 점. 무릉도원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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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위에 지은 그늘집

주변의 경관이 물로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세연정(洗然亭)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둘레에 두르고, 세연지(洗然池)와 회수담(回水潭), 두 연못 사이에 자리 잡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정자문화가 발달했다. 자연을 이용가치로 생각하는 서구의 사고방식이 아닌 모든 물물(物物)과 자연을 하나로 생각했던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벗하고 싶어 했기에 사방이 트인 그늘집을 만든 것이다. 세연정의 주인(?) 윤선도 역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얻은 채 겨우 볕만 가릴 수 있는 집을 지었다. 그리고 오우가(五友歌)를 통해 다섯의 벗을 곁에 두고 혼자서도 무료하지 않고, 벗과 더불어 시를 짓고, 차를 마시며 살고 싶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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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공미의 조화

세연정은 여느 정자와는 그 형태나 의미가 조금 다르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면 독특한 형태의 판문이다. 사방으로 달린 여러 개의 문은 한국 정자문화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절과 소통의 도구이지만 이곳의 판문은 좀 더 특이하다. 문을 완전히 개방했을 때도 윗부분은 처마에 달리고 아랫부분은 땅에 늘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특이한 형태의 문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의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세상을 피해 숨어 살고 싶어 했던 윤선도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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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연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공미와 자연미의 조화이다. 보통 한국의 정자는 차경(借景)이라 하여 자연 속에 있되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그 모습 그대로를 조경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세연정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자연에 개입한다.

윤선도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길 위에 흙으로 담을 쌓은 후, 그 위에 널찍한 판석을 덧대어 보를 쌓고 세연지를 만들었다. 이 낮은 담장 형태의 보는 가물 때는 물을 가두고, 물이 많을 때는 담장 위로 흘려보내 사시사철 일정한 높이의 수위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못 위에 커다란 일곱 개의 바위를 배치하고, 인공섬을 만들어 자신만의 낙원을 구축해 놓았다. 윤선도는 이렇게 자신만을 위한 못을 만들고, 이 초록빛 연못 위에서 배를 띄워 노닐며 ‘세연’의 꿈을 시로 노래했던 것이다. 또한 측면에는 두 개의 동대와 서대를 만들고 무희들의 춤을 감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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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닮은 공간 안에서도 세속 여인들의 춤을 감상했다고 하니, 윤선도의 취미는 참으로 호사스럽고 별스럽다. 이는 은거(隱居)와 별서(別墅)의 정서를 표방하는 정자문화와는 또 다른 멋이다.

차를 사랑하는 차인(茶人), 윤선도

… 중략 …

작은 집 낮은 울타리는 어찌 변통했지만

거친 차 현미밥은 더할 수 없다네

끝내 미편한 마음은 먼 기약하며

언제나 부용동의 내 집을 생각한다네.


<부차계하운(復次季夏韻)>부분, 윤선도

윤선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인(茶人)으로서의 면모이다. 제 아무리 풍족한 환경 속에서 풍류를 즐겼던 윤선도지만 유배생활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던 차를 마음껏 즐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윤선도의 차에 대한 그리움은 곧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그런 마음을 <부차계하운>에 담았다.

또한 윤선도는 차인답게 차를 우리는 물을 선택함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보길도에 유배하던 시절에도 순천 도선암(導船庵)의 고산천(孤山泉)에서 직접 길어 온 물로만 차를 우렸다고 한다.

세연정의 두 연못 위로 청명한 5월의 하늘이 드리운다. 그 모습은 하늘정원에 온 듯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곳에 앉아 있노라면 윤선도가 아닌 누구라도 한 잔의 차를 우리고, 다섯 벗〔五友歌〕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으리라.

글_ 임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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