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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뻐꾸기 소리] 듣는 가슴마다 슬픈 정 심는 여름새

[에세이 | 뻐꾸기 소리] 듣는 가슴마다 슬픈 정 심는 여름새

입력 2010-07-18 00:00
업데이트 2010-07-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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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소리를 들으며 계절 감각에 젖기란 어렵게 되었다. 기상청에서도 봄철을 관측하던 지정조류인 종다리나 뻐꾸기가 서울 근교에 날아들지 않아, 이러한 철새들에 의한 봄철의 관측은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공해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이에서도 볼 수 있다. 몇 해 전, 여름철의 고향길에서 다음과 같은 어설픈 시 한 편을 역은 바 있다.

“푸른 그늘에 / 뻐꾸기 운다 / 담 안 석류꽃 / 양글게 붉고 / 땅볕 골목길 / 눈이 부시다 / 귀 익은 음성들 / 간 곳이 없고 / 발길에 꽂히는 / 뻐꾸기 울음.”

80년대 초가 아니었던가 싶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것처럼 뻐꾸기는 앞산에서도 울고 뒷산에서도 울어 여전했다. 이런 시절엔 같은 소리로 들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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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 뻐꾹


의 뻐꾸기 소리도 앞산에 비가 묻어올 때나 뒷산에 해 설핏 기울 녁에 듣자면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일었다. 그 무렵 들었던 뻐꾸기 이야기 탓이었던가. 뻐꾸기는 제 살붙이를 잃고, 그 서러움을 저리 슬프게 운다는 이야기였다.

계집 죽고 자식 죽고 / 망근 팔아 장사하고 뻐꾹 뻐꾹 뻐꾹새야 / 숲에 숨은 뻐꾹 영감 / 짚신 팔아 술 사 먹고 / 목이 말라 못다 우나 / 뻐꾹 소리 왜 그치나

이런 동요들을 부르기도 했다. 소리를 들으면 안쓰럽고, 소리가 멎으면 웬일인가 궁금하고, 여름철마다의 동심이었다. 비단 동심뿐 아니라 뻐꾸기 소리는 듣는 이마다 가슴에 슬픈 정을 놓는 것인가. 소설가 최정희는 뻐꾸기 소리를,

뻐꾸우욱 뻐꾸우욱

뻐꾹 뻐꾹


두 가지로 따내고, 이 두 가지 소리의 어느 것이나 당신에겐 서글픈 소리였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뻐꾸우욱’ 하는 마디 없는 소리가 더 마음을 흔들었다. 뻐꾸기 세상에도 무슨 원통한 일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고, 슬픈 일이 있는가 봐.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저리 섧게 울랴.”는 상상이었다. 생활 체험이 고달프고 어려우면 그만큼 뻐꾸기 소리는 구슬픈 소리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산 윤선도의 저 아름다운 보길도 생활에서 읊은 <어부사시사> 중,

우는 것은 뻐꾸긴가 푸른 것은 버들숲인가 / 어촌(漁村) 두세 집이 냇속에 날락들락 / 말가한 깊은 소(沼)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의 뻐꾸기 소리는 경쾌한 맑은 흥을 돋우어 준다. 초장의 “뻐꾸긴가, 버들숲인가”의 음조나, 중장의 “날락들락”의 짓시늉말 그리고 종장의 “말가한 싶은 소, 고기 뛰노나다”의 표현에서, 고산의 가슴에 와 닿은 뻐꾸기 소리는 하나도 구슬픈 것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또 한 분, 노계 박인로의 마음에 가서 닿은 뻐꾸기 소리는 고산의 것과는 다른다.

낮잠을 자주 깨우는 뻐꾸기 소리 / 어찌하여 시골 사람의 마음을 재촉하나 / 서울의 화려한 집에나 가서 울어 / 밭갈이 권하는 새 있음을 알리거라.

이 시의 제목은 <대승음(戴勝吟)>, “뻐꾸기를 두고 읊는다”고 했다. ‘대승’은 뻐꾸기를 달리 이르는 말로, 뻐꾸기의 머리 부분에 부인들이 사용하는 ‘머리꾸미개’같은 깃털 모양이 있다. 하여 일컬어져 온 말이다. 이는 그렇다 하고, 이 시로 보아 노계가 따낸 뻐꾸기 소리는,

낮잠 구만 자고, 일어 일을 하라

일어 일을 하라, 낮잠 구만 자고.


로 따낸 것이 된다. 그리하여 노계는 뻐꾸기에 짜증이다. “잠시 일손 놓고 쉴 참의 낮잠인 것을 어쩌자고 너는 자꾸 울어 깨우며 일만 하라는 재촉이냐, 여름지이 우리야 어련히 알아서 할까. 차라리 서울의 고대광실 놀고 먹는 곳에나 찾아가서 그 울음을 울어 ‘여름지이 권하는 새’도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 한 것이다. 뻐꾸기를 한자로 ‘포곡(布穀)’ ‘획곡(獲穀)’이라고 한 것도 그 울음소리에서 ‘여름지이를 부지런 부지런히 하라’는 것으로 따내어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뻐꾸기는 마침 여름지이가 시작되는 5월에 찾아와서 끝나는 10월 경까지 머물다 가는 철새이기 때문이다. 뻐꾸기의 산란기도 5~8월로 여름지이의 한창 바쁜 철과 맞먹는다. 그러고 보면, 뻐꾸기를 ‘포곡’이나 ‘획곡’이라 한 것은 노계의 ‘권경금’과 같은 맥락에서 붙여진 이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끝으로 허영자가 따낸 뻐꾸기 소리,

돌아온 / 각설이 / 저 각설이 / 내가 왔다 / 내가 또 왔다 / 울어제끼면

얼었던 흙살도 / 절로 터져 / 갈라지고 / 벗은 나무 / 아랫도리 / 초록물도 젖는다.


는 짧은 마디의 시행으로 특이하다. 철 따라 날아든 뻐꾸기를 “작년에 왔던 갈설이 죽지 않고 또 왔네”의 장타령꾼으로, 뻐꾸기 소리를 “내가 왔다, 내가 왔다”로 따내고 있는 잔재미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도 사람들의 심정 따라 이렇듯 다양하게 따낼 수 있는 것을, 아 이제 뻐꾸기 영영 날아들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심정도 아주 메말라버릴 것 아닌가.

글_ 최승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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