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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 어린이들에게 번 돈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지요

[그의 삶 그의 꿈] 어린이들에게 번 돈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지요

입력 2010-05-16 00:00
업데이트 2010-05-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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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림당 나춘호 회장

《예림당》 나춘호 회장을 인터뷰하러 가기 하루 전 여주에 있는 ‘해여림식물원’에 다녀왔다. 해여림식물원은 예림당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으로 2005년 나춘호 회장이 설립했다. 인터뷰를 위해서는 식물원을 먼저 보고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개장(4월 15일)하기 전이라 식물원에는 일하는 인부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봄꽃들도 아직 시기가 이른 듯 산수유꽃만 노랗게 피어 있었다. 식물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한 출판사에서 이렇게 규모가 있는 식물원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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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일 여주에서 캐온 쑥으로 쑥된장국을 끓여먹고 예림당 본사가 있는 강남구 삼성동으로 향했다. 먼저 식물원을 하게 된 계기를 알고 싶었다.

“제가 시골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식물들과 더불어 생활해 왔기 때문에 평소에 식물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지요. 안타까운 것은 중고등학생들이 식물들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이 나무에서 과일을 따듯이 나오는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각종 식물도감을 펴내어 어린이들에게 식물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책도 식물의 모습을 온전히 다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놀이터 겸 식물학습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지요. 또 국제회의 참가차 외국에 나가보면 식물원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문화의 힘을 많이 느끼게 된 것도 큰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자연에서 배우기보다는 책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배운다. 그러다 보니 머리에 아는 것은 많을지 몰라도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품은 모르는 것 같다. 나춘호 회장은 그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식물원을 만든 이유는 자연의 향기를 어린이들이 직접 맡고 느끼면서 자라게 되면 나중에 성장했을 때도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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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실정에 맞는 어린이책을 만들자

그는 20대 초반 무작정 상경했다. 남자로 태어나서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살려면 우선 서울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신문배달부터 시작해서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책 나르는 일, 영업, 기획 등의 일을 하다 드디어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라고는 하지만 직원 하나 없고 사무실 전화도 없어서 임시로 제본실 전화번호를 책 뒤에 적어넣었다. 그 당시엔 출판사 해서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출판사를 한다고 하자 그의 아내는 “이제 셋방살이 면하고 집 사서 살기엔 틀렸군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때가 1972년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 그 당시엔 외국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동용 책이지만 우리 실정에 안 맞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탈 것들》이라는 그림책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2층버스나 경주용차 같은 것들이 실려있기 일쑤였다.

우리 실정에 맞는 그림책을 만들어보자 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사진기도 드물었고 슬라이드 필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명동 달러골목이나 부산 광복동의 외국서적 파는 데서 잡지에 실린 것을 오리기도 했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가는데 기차 연결 통로의 달력 꽂는 데에 증기기관차 멋진 그림이 있어서 그걸 살짝 빼내려다 승객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자료를 모아 책을 만들었는데 어느날 종로서적에 들렀다가 대한통운에서 그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허락도 없이 대한통운 화물차를 책에 실었는데 그것 때문에 뭐라 하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겁을 잔뜩 먹고 대한통운 담당자를 만났다. 뜻밖에도 우리 회사를 홍보해줘서 고맙다며 사례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 감사패와 함께 금일봉으로 받은 돈이 10만원! 책 한권을 제작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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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만든 ‘해여림식물원’
어린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만든 ‘해여림식물원’


소리 나는 책, 냄새 나는 책, 푹신푹신한 책

나춘호 회장은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관찰력·탐구심이 남달랐다. 공작, 만들기를 좋아했다. 선풍기를 만들어 학교 전시회에서 특상을 받기도 하고 라디오를 직접 만들어 듣기도 했다. 호기심도 많았고 한번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밤을 새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사람이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없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만드는 데도 그의 이런 탐구정신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가만히 있기보다는 망할 땐 망하더라도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림당에서 나온 책은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림책에 나오는 소를 누르면 음메~ 소리가 나는 책, 세계특허를 받은 구구단책은 3단을 누르면 3단이 나오고 7단을 누르면 7단이 소리로 나온다. 유치원생들이 그 책을 보고 구구단을 다 뗄 정도. 냄새 나는 책도 있다. 향료를 넣어 가지고 인쇄를 해 사과 그림에서 진짜 사과 냄새가 난다. 푹신푹신 그림책이라고 해서 양 그림에 진짜 양털을 넣어서 만든 책도 있다.

녹음기가 처음 보급될 무렵인 80년대에 나온 오디오북은 모두 1억 7천만 부가 팔리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과학 학습만화인 《WHY?》 시리즈는 3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 알고 봤더니 필자의 아들도 어릴 적에 예림당에서 나온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잠자리에 든 세대였다.

다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그중 한 가지. 외국에서는 문고본이 각광을 받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문고본을 내야겠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원고를 만들고 그림을 넣고 예쁜 책장까지 만들어서 ‘작은손문고’를 출간했다. 그러나 판매량이 영 시원치 않았다. 결국 품절을 시키고 책 사이즈를 크게 만들고 나서야 판매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책이 제일 크고 그 다음이 한국, 일본 책이 제일 작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국민성과 책 크기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남들 안 하는 것을 하라

나춘호 회장은 항상 메모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도 그렇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한다. 미리 보낸 질문서에도 빼곡하게 메모를 해놓은 것을 보고 그의 꼼꼼함과 준비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항시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생각하고 있으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 출판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을 하라고 하고 싶어요. 기상천외한 것을 찾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어려운 것, 힘든 것을 솔선수범해서 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출판뿐만 아니라 뭐든지 성공한다고 봐요. 저는 과거에 서점에 가면 직원 일을 많이 도와줬어요. 같이 책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주고 그러니까 수금하러 가도 반길 수밖에 없지요.”

그의 좌우명은 “매사를 즉흥적으로 처리하기보다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한다”라고 한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비결이다. 그래서 그는 외출할 때 항상 화장실에 들러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고 나오는데 일본 소학관(일본의 대표적인 어린이책 출판사)의 회장이 자기 회사를 사설 문부성이라고 자부한다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예림당의 책을 읽고 자란 어린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역군이 될 것이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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