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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하재봉의 영화읽기]하치이야기

[Movie|하재봉의 영화읽기]하치이야기

입력 2010-03-28 00:00
업데이트 2010-03-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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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간 중심의 편협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바라본다면 지구는 우리가 함께 사는 행성이고 그곳의 수많은 생명체들 역시 각각의 존재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중에서 인간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물이 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치이야기>의 감동은 체감도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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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내 인생>, <사이더 하우스>, <초콜릿> 등을 만든 덴마크 출신의 라세 할세트롬 감독의 영화 <하치 이야기>는 1920~30년대 일본 동경에서 실제 생존했던 하치코라는 개에 관한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일본판 <하치이야기>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다. 하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아야노 마사루, 신도 가네토 등 여러 명의 작가들이 쓴 하치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있고,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진 적이 있어서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다. 동경 시부야 역에는 역 출구 중에 ‘하치코’라는 출구가 따로 만들어져 있고, 그 출구를 따라가면 역 앞 작은 공원에 세워진 하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대학교수인 파커(리차드 기어)는 퇴근길 기차역 플랫폼에서 길 잃은 강아지를 발견한다. 파커 교수의 부인(조안 알렌)은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 안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을 반대했지만 어린 하치를 끔찍이 아끼는 파커를 보고 받아들인다. 일본의 아키타견인 하치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파커를 따라 아침 출근길에 기차역까지 배웅하고 저녁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되면 기차역 앞 공원까지 마중 나가서 파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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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치와 파커의 만남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끝이 난다. 파커는 강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하치는 언제나처럼 오후 5시만 되면 기차역 앞에 나타나 파커를 기다린다. 파커 사후에도 무려 9년을 넘게 한결같이 매일 오후 5시만 되면 교수를 기다리기 위해 기차역 앞에 모습을 나타낸 하치는 눈 내리는 겨울밤, 교수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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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세 할세트롬 감독의 헐리우드판 리메이크 <하치이야기>는 원작과 조금 차이가 있다. 1923년 11월, 아키다 현 오다테의 마세과장 농가에서 태어난 하치는 대학 은사인 우에노 교수에게 보내진다. 1924년 1월,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하치는 도쿄 시부야까지 낯선 여행을 시작해서 우에노 교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틀 간의 기차여행으로 너무나 지쳐 있었다. 우에노 교수의 지극한 정성으로 황금빛 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강아지는 힘을 되찾았고 우에노 교수는 하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할리우드판 영화에서는 하치가 기차역에서 주인이 분실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갈 데 없는 하치를 집으로 데려와서 부인의 반대 끝에 겨우 함께 살기 시작한 것도 원작과는 다르다. 또 파커 교수 사후 실제로는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자 낯선 사람 집에 맡겨졌다가 하치는 도망쳐 시부야 역으로 오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교수의 딸이 기르다가 하치가 기차역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자 놓아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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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하치의 주인인 우에노 교수는 하치와 함께 목욕도 하고 부둥켜안고 잘 정도여서 우에노 부인은 하치에게 질투까지 느꼈다. 1925년 5월 21일, 우에노 교수는 강의 중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다. 하치가 죽은 것은 1935년 3월 8일, 그러니까 우에노 교수와 같이 한 행복한 시간은 17개월, 그리고 우에노 교수 사후 10년의 긴 기다림 끝에 눈 내리는 시부야 역에서 하치는 교수 곁으로 돌아간다.

원작이 각색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 입맛에 맞게 가족주의의 강화라든가 주변부 인물들의 등장 등 변화된 모습은 있지만 라세 할세트롬 감독의 연출은 세밀하게 섬세해서 원작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겨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치와 파커 교수의 교감인데 특히 비바람 부는 밤, 헛간에 하치를 혼자 있게 한 것이 마음에 쓰인 파커 교수가 자다가 일어나 헛간에 달려가서 하치를 데리고 와 거실에서 함께 지내는 장면은 왜 하치가 죽을 때까지 파커 교수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파커 교수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은 하치에 대한 묘사도 좋다. 후반부에 해당하는 영화의 1/3이 교수 없이 하치 혼자 기다리는 일을 반복하는데 주변 인물과의 교감이나 하치의 외로움, 그리고 변함없이 교수를 기다리는 하치의 마음이 섬세하게 살아나면서 오히려 파커 교수와의 교감이 진행되는 전반부의 감동과 파괴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는 영화에서도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소재지만 <하치이야기>에 등장하는 하치와 파커 교수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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