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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공기놀이

[속삭임]공기놀이

입력 2010-03-21 00:00
업데이트 2010-03-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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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그리움에 닿아 있고 그리움은 슬픔에 뿌리를 박고 있다. 내 슬픔의 뿌리가 고향에 닿아 있듯 그리움의 절반은 유년에 기대어 있다. 그래서인지 문득 유년의 기억 쪽으로 핸들이 돌려지곤 하는 것이다. 두 시간을 달려서야 도착하는 고향, 핸들이 그곳을 향하는 순간 나는 이미 슬픔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애의 손은 예뻤다. 그 애를 볼 때마다 손가락이 짧고 퉁퉁한 내 손이 부끄러웠다. 공깃돌을 손등에 얹고 요리조리 옮기고는 서슴없이 다섯 알 모두를 받아내던 그 아이, 같은 동네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부끄러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긴 머리에 동그란 눈으로 공깃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내 슬픔의 언저리에 자리 잡은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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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거리며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 하늘로 올랐다 내려앉는, 또로록 손등을 굴러 떨어지는 공깃돌을 보고 있다. 그때 그 애가 던진 공깃돌은 저 어둠 어디에 멈추어 별이 되었을까? 끝내 말하지 못한 수줍음처럼 아직 내려앉지 못하고 생의 7부 능선을 오르고 있을까? 문득 손등에 돋은 검버섯를 보며 그때 던져 올린 공깃돌을 생각하다 문득 별처럼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에 가슴 절반쯤 슬픔에 잠겼을까?

난 어둠이 좋다. 어둠의 갈피마다 그리움의 꽃이 피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아름답지만 만질 수 없는 그래서 더 그리운 그리움이 시시각각 다른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에 어둠이 내린다. 어둠에 기댄 그리움의 무게가 고요보다 무겁다. 가지마다 유년에 던져 올린 공깃돌이 촘촘히 꽃으로 피어 있다. 흔들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슬픔이 그렁그렁 달려 있다.

글_ 문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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