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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대해부] 돈선거 실상

[지방선거 대해부] 돈선거 실상

입력 2010-03-17 00:00
업데이트 2010-03-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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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비용의 최소 3배…돈먹는 지방선거 빚 갚으려 뇌물 유혹에

“중앙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돈 안 드는 선거’를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비후보자들에게 지방선거는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습니다.” 서울 A구청장에 도전하는 예비후보 김모씨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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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규정한 A구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2억 4200여만원이다. 법정 선거비용제한액은 기초단체장의 경우 9000만원+(인구수×200원)+(읍·면·동 수×100만원), 특별·광역시장의 경우 4억원(인구수 200만명 미만은 2억원)+(인구수×300원), 도지사 선거는 8억원(인구수 100만명 미만이면 3억원)+(인구수×250원)으로 책정된다.

그러나 김씨는 16일 “대부분의 후보들이 예비후보등록 몇 개월 전부터 이미 한 달에 2000만원씩은 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 선거비용제한액만으로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기 전 소속 정당에 예비후보 심사요청을 했고, 이후 1·2차 심사절차를 밟았다. 최종 후보자를 확정하기 전에 3·4차 심사도 남아 있다. 심사요청을 할 당시 기탁금 명목으로 200만원을 냈다. 경선을 치르기 위한 추가 비용도 예상된다.

후보자들은 기본적으로 선거사무실, 명함·현수막 등 홍보용품, 정책자료집 등을 준비한다. 공식적인 선거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김씨는 그동안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 사무실을 구할 필요 없이 예전처럼 임대료만 내면 되지만, 대부분의 예비후보들은 사무실부터 차리고 운전사와 비서를 고용해야 한다. 명함은 하루에 보통 3000명에게 뿌린다.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부터 자기소개용으로 정당과 기호를 뺀 채 돌린 명함값만 매월 120만원이었다. 여기에 수행원들의 식사 및 급료, 여론조사 비용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A구에는 김씨와 같은 정당 소속 예비후보자만 13명이다. 아직 등록을 하지 않고 지역에서 터를 닦는 인사들도 상당수다. 이 가운데 단 한 명만 공천을 받아 본선에 나설 수 있다. 선관위로부터 기탁금을 돌려받는 것도 공천이 최종 확정된 후보가 선거에서 15% 이상의 지지율을 올렸을 때만 가능하다. 결국 나머지 12명은 허공에 돈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씨는 “정당에서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을 모두 받아들이다보니 후보자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정작 유권자들은 똑같은 기호와 정당이라며 귀찮아 한다.”고 토로했다.

최종 후보자로 낙점되면 돈 쓸 일이 더 많아진다. 본격적으로 상대 정당 후보자에 맞서야 하고, 그동안의 당내 경쟁자였던 예비후보자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 선거 관계자는 “같은 당 소속 예비후보가 6명이라고 할 때, 최종 후보자로 낙점된 이는 본선에서 나머지 5명의 도움이 절실하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데 맨입으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비용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특히 기초단체장의 경우 ‘비공식적’ 비용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게 출마 준비자들의 전언이다.

경기 B시장 출마 준비자 이모씨는 “얼굴을 알리려면 지역 행사에 꾸준히 참석해야 하고, 선거운동을 돕는 수행원, 자원봉사자들을 챙겨주다보면 거액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라고 표현했다.

한 출마 준비자는 “법정 선거제한비용의 최소한 3배 이상은 쓴다고 보면 된다.”면서 “선거비용의 80% 정도가 ‘지역 책임자’들을 관리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11월 오근섭 전 경남 양산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선거 빚’ 때문이었다. 오 전 시장은 2004년 6월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의 양산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자금으로 빌린 돈에 대한 상환독촉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24억원을 뇌물로 받아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선거 빚만 무려 60억원이었다.

한국지방행정학회 라희문 교수는 “기초단체는 지역이 좁고 지역 주민끼리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국회의원 선거보다 오히려 투명하지 못하다.”면서 “지역 규모가 작을수록 씨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많고, 돈을 주고 받아도 소문이 나지 않아 서로 돕는다는 차원에서 ‘돈 선거’가 공공연히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2010-03-1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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