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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스러운 이야기②] ‘참삶’의 그 말을 다들 아십니까

[촌(村)스러운 이야기②] ‘참삶’의 그 말을 다들 아십니까

입력 2010-03-07 00:00
업데이트 2010-03-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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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땅이 좁다고 이 산천 저 산천 유람하듯이 살다가 이곳에 정착한 지 8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땅 어딘들 좋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이 집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멀리 가까이 산들이 우리 집을 위해서 솟아나서 꼭 알맞게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니, 우리 집이 주변의 산들과 전혀 이물감 없는 한 풍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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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마당이라는 별칭이 있는 정남향 집.
햇살마당이라는 별칭이 있는 정남향 집.


햇살마당이라는 별칭이 있는 정남향 집인 우리 집은 고맙게도 낮에는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볕이 있어서 집 안에서보다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더 좋고, 달이라도 떠는 밤이면 마당 가득 쏟아지는 달빛은 은빛 축복인 듯합니다. 동네를 적당히 벗어나 있어 번잡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 외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니라 소외된 느낌도 없습니다. 지난날 중농 정도의 농가로서 규모가 제법 있고 작은 공간 하나하나도 꼭 알맞은 자리에 있습니다.

세칸짜리 본채와 두칸짜리 사랑채, 그리고 두칸짜리 대문채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고 대문채 한쪽으로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문채 뒤로는 나무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랑채 한쪽에는 옛날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 있고 그 옆에 불 때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마구간 다락도 무엇인가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랑채 뒤에는 작은 골방도 하나 있습니다. 또한 사랑채 마루는 조금 넓은 편이지만 안채 마루는 좁고 긴 편입니다. 그리고 안채와 대문채 사이에 우물이 있는 곳에는 원두막처럼 지붕만 있는 건축물이 있고 그 안에 우리 집의 보물인 우물이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가장 자랑했던 우리 집 우물은 그 공간에 자연 바위 동굴이 있고 그 바위 동굴을 통해서 흘러나와서 작은 우물을 만들어 집을 한층 빛냅니다. 한여름에는 얼음물처럼 차고 겨울에는 맨손을 넣어도 따뜻한 느낌이 나는 우물물이 있어 행복합니다.

작은 우물 위로 바위틈에는 자생으로 자라나는 차나무가 있어서 늦가을부터 겨울에 얼어서 더 필 수 없을 때까지 하염없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차꽃이 우물 위로 툭툭 떨어져서 한동안 물위를 떠다닙니다.

차꽃은 동백꽃과 비슷하게 그냥 송이째 뚝 하고 미련 없이 떨어지지만 떨어지고도 그 꽃은 모양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품위를 지킵니다. 작은 우물 위로 하얀 꽃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그냥 예술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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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과 마루를 잇는 디딤돌.
대문과 마루를 잇는 디딤돌.


또한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한꺼번에 피고 열립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핀 꽃이 다음해 열매로 맺히는데 그 시기가 꽃피는 시기와 같습니다. 차꽃이 피었다 떨어지기 시작할 때 차열매도 함께 떨어지는데 꼭 구슬 같고, 보석 같습니다.

우물 위 바위틈 차나무 열매는 따로 모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제가 바위틈 차나무를 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좁은 바위틈에서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들까 싶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푸른빛을 잃지 않고 우아하고 당당하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고맙고 멋져서입니다.

차철에는 그 나무의 잎만 따로 따서 덖습니다. 차맛, 과히 일품입니다. 너무 양이 작아서 나누지는 못하지만 운 때가 잘 맞으면 맛볼 수 있는 행운이 누군가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마당 또한 이 집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데 요즘 흔한 잔디나 자갈 또는 시멘트 그 어느 것도 아닌 온전한 흙 마당입니다.

마당 남쪽으로 좀 많은 장독대가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그냥 마당으로 있으면서 그때그때 용도에 따라 쓰여집니다.

집이 약간 외지기는 하지만 길에서 정면으로 집이 보이지 않게 대문이 살짝 각도를 틀고 앉힌 센스가 돋보입니다. 또한 동쪽으로는 바람을 막아주는 대나무 밭이 있어서 집을 더욱 아늑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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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잘 드는 마루에 놓인 찻상.
볕이 잘 드는 마루에 놓인 찻상.


제가 이 집에 오기 전에 강원도 정선에서 살다가 태풍 ‘루사’에 엄청 심하게 당하고는 거의 빈손으로 내 아들 기범이 손을 잡고 찾아들어온 곳인데 이 집 주인이셨던 분들은 평생 농사만 지으신 참농부로서 지게가 몸같이 어울리는 바깥어른과 일을 많이 한 탓에 다리가 많이 아파서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루 종일 밭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주머니, 그리고 작년에 돌아가신 이 집을 당신 영감님과 직접 지으셨다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제가 이사 오고도 할머니는 자주 오셔서 마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련한 그리움이 담긴 눈빛으로 집 구석구석을 둘러 보셨고 때로는 집 뒤란이나 죽순이 나올 때는 대밭까지 둘러보셨고 어떤 때는 대문간에 하염없이 앉아 계시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여 전까지도 밭에 나와서 일을 하셨습니다. 노인이라 겨울 동안을 거의 방에만 계시는지 뵐 수가 없었고, 날이 풀렸다 싶으면 할머니는 밭과 한 몸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무언가 일을 하셨습니다. 참꽃이 필락말락 할 때면 아들이 거름을 듬뿍 준 밭고랑에 감자를 심으셨고, 녹차철에는 어두운 눈을 비비며 여린 찻잎을 따셨고, 토란을, 콩을, 고추를, 호박을, 그리고 대추나무 잎이 무성해져서 그 나무에 깃든 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온갖 씨앗들을 심었고, 버섯을 따시고, 토란 껍질을 벗기시고, 감잎차를 만들기 위해서 감잎을 따셨습니다. 가끔은 막 낳은 계란 두어 알을, 어떤 때는 대문간에 호박잎에 곱게 싼 여리고 예쁜 애호박을, 감자나 고구마를 캐시면 항상 밭에다 따로 모아 두시고 가져가서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게으른 풋농사꾼의 밭은 항상 풀밭일 수밖에 없어서 괜히 할머니가 보시고 탓하실까봐 걱정이지만 언제나 한동안 보시기는 하지만 탓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마 속으로는 혀를 껄껄 차셨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밭을 자신의 몸 가꾸듯 하시는 분들이라 제가 하는 짓이 얼마나 어설프고 딱해 보였을까 싶지만 그래도 저 또한 할 만큼 하고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곧 봄소식과 함께 마당에도 밭에도 풀이 먼저 땅을 뚫고 올라오면 풀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겨울에도 죽지 않고 뿌리로만 살아 있는 풀들도 많고 그 풀들은 추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땅과 한 몸인 양 견고합니다.

그 매서운 한겨울을 살아내고도 뽑힐 수밖에 없는 풀들은 좀 슬프기는 하지만 그 위대한 생명력으로 또 어딘가에 자손을 퍼뜨려 두었을 것입니다.

그 풀들 또한 우리 집의 한 풍경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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