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다윈의 거북이’

[공연리뷰] 연극 ‘다윈의 거북이’

입력 2009-10-16 12:00
업데이트 2009-10-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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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진화한 존재라고? 근현대사 신랄하게 비틀어

2006년,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5살의 세계 최고령 거북이가 숨졌다. ‘헤리엇’이란 이름의 이 암거북이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이 1835년 갈라파고스섬에서 데려왔다.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헤리엇의 죽음에서 기발한 착상을 해낸다. 헤리엇이 다윈의 집에서 나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20세기 근현대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다윈의 진화이론처럼 환경에 적응하느라 점차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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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의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는 인간세계 외부의 관찰자인 헤리엇의 시선을 통해 20세기 전후 근현대사를 신랄하게 비틀고, 뒤집는다. 200살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난 헤리엇이 저명한 역사학자에게 들려주는 목격담은, 기술문명에 있어서 획기적인 진보의 역사와 달리 인간 정신사에서는 전쟁과 폭력을 되풀이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유대주의가 만들어낸 마녀사냥 드레퓌스 사건, 스페인 게르니카 폭격,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이라크 바그다드 폭격까지 헤리엇의 눈에 비친 인간의 역사는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다. 인간의 정신적 진화를 믿지 않게 된 헤리엇의 유일한 희망은 이제 갈라파고스 섬으로 돌아가는 것뿐. 하지만 현대사를 증언하는 대가로 갈라파고스 행을 약속했던 역사학자도, 그의 아내 베티도, 그리고 헤리엇의 진화를 연구하는 의사마저도 헤리엇을 철저히 배신한다. 마지막, 헤리엇의 극적인 복수로 닫히는 연극은 지구상 가장 진화한 존재라고 자부하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질문한다. 11월1일까지 세종M씨어터. 2만 5000~3만 5000원. (02)399-1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9-10-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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