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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동명원작 리메이크 ‘퍼니게임’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동명원작 리메이크 ‘퍼니게임’

입력 2009-10-09 12:00
업데이트 2009-10-0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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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배경까지 그대로… 숨막히는 공포의 부활

1997년의 칸영화제. 오스트리아에서 도착한 ‘퍼니게임’의 충격파는 상상을 넘어섰다. 그리고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폭력적인 상황을 묘사한 미카엘 하네케는 이후 유럽 예술영화의 선두주자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말쑥한 차림의 두 청년이 호숫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 가족을 방문한다. 계란을 달라는 주문으로 발동을 건 게임은 죽음의 올가미가 되어 가족을 옥죄는데, 익숙한 전개방식이 매번 거부당하는 걸 목격하는 관객 또한 게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여기에 가족을 구하는 영웅 같은 건 없으며, 악당은 목숨을 구걸하는 자에게 추호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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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케가 ‘퍼니게임’의 10주년을 맞아 리메이크를 결정한 데는 작가적 욕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와 함께 21세기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자기 영화의 근간인 ‘퍼니게임’을 좀 더 많은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러자면 세계의 관객에게 낯익은 배우들과 영어로 된 대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10년 만에 선보인 리메이크는 놀랍게도 원작을 ‘쇼트 바이 쇼트’로 따다 놓았다. 거의 모든 장면이 똑같고, 바뀐 대사를 찾기란 힘들며, 같은 음악에다 휴양지의 배경마저 흡사하다. 마치 하네케는 자신의 원작이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고 천명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퍼니게임’을 높이 평가했던 관객의 경우 리메이크를 꼭 봐야 할까? 나오미 와츠, 팀 로스, 마이클 피트의 연기와 거장 다리우스 콘쥐의 촬영을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모를까, 차이점을 확인하고자 리메이크를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대답이 달라진다. 원작이든 리메이크든 ‘퍼니게임’은 꼭 봐야 하는 영화다. 영화가 제공하는 공포와 긴장의 최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영화적인 쾌감이 크거니와 이에 더해 관객이 폭력의 무자비한 얼굴을 마주하도록,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도록 만든다(단순히 폭력 묘사에 치중하는 영화들과 ‘퍼니게임’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자본주의를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퍼니게임’의 주인공은 그러한 자본주의의 A급 수혜자들이다. 고급 요트와 함께 휴양지로 떠나는 차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벌이는 놀이는 우아하다. 유시 비욜링과 베냐미노 질리 같은 옛 성악가들의 이름을 맞춰보려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그들에겐 여유와 격조가 느껴지지만, 기실 그들의 기품이 유지 가능한 바탕은 ‘과다한 소유’다. 생활고에 찌든 사람들이 꿈만 꾸는 삶을 실제로 살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삶이 착취의 이면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전근대사회에서 귀족은 자신의 지위를 당연시했다. 민중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천박한 신분제와 턱없는 유산을 타파한 지 몇 세기, 지구를 뒤덮은 자본주의의 물결은 새로운 귀족계급을 빚어냈다. 하네케는 지나치게 가진 자,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자, 남의 것을 탐하는 자들에게 원죄를 언도한다. ‘퍼니게임’의 주인공 가족이 두려움에 떠는 건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두 악당에게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따로 있으니, 마음속에 영혼이 없기는 그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퍼니게임’이 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원제 ‘Funny Game U.S.’, 감독 미카엘 하네케, 8일 개봉.

<영화평론가>
2009-10-0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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