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엄마한테는 내가 필요해/이성률

[엄마와 읽는 동화] 엄마한테는 내가 필요해/이성률

입력 2009-08-17 00:00
업데이트 2009-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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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야, 냉장고에서 계란 좀 갖다 줄래?”

엄마가 생선을 구우면서 찬우를 불렀다. 엄마가 계란찜이나 계란말이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아빠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를 할지도 몰랐다.

찬우는 블록 쌓기를 하다가 다용도실에 있는 냉장고로 갔다. 그런데 계란을 꺼냈을 때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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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는 고개를 젖혀서 양쪽 눈과 코 사이에다 계란을 놓고 천천히 한 발을 옮겼다. 그렇지만 두발째는 뗄 필요가 없었다.

“퍽!”

찬우는 이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다용도실 앞에 나타난 엄마가 눈썹을 모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파바박, 불꽃이 튈 것 같았다.

“찬우 너!”

찬우는 강아지가 꼬리를 내리듯이 슬며시 눈꼬리를 내렸다. 엄마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애가…….”

찬우는 최대한 착하게 보이려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배에다 갖다 댔다. 그리고 코를 훌쩍이는 시늉을 했다.

“넌 계란 하나도 제대로 못 가져오니?”

“다음부턴 손으로 갖다 드릴게요.”

“뭐? 너 그럼 어떻게 가져오다 깬 건데?”

“여기에다가요.”

찬우는 고개를 젖혀서 손가락으로 두 눈과 코 사이를 가리켰다.

“내가 정말 못 살아.”

“여기다 놓고 가면 안 떨어질 것 같았단 말예요.”

“니 코가 테이프니? 딱풀이야?”

“푸우.”

찬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그만 해도 다시는 안 그럴 텐데 엄마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렇잖아도 납작코인 게, 어휴 정말.”

찬우는 꾀가 나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엄마, 생선이 타려나 봐요.”

“누가 너더러 생선 걱정하라고 그랬니? 뜨거우면 지가 알아서 뒤집는 거지.”

“엥?”

찬우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마를 올려보았다. 그러고는 속으로

‘엄마, 바보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왜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냐구? 어유, 말해 봤자 입만 아프지. 저리 비키기나 해!”

엄마가 찬우를 밀쳤다.

‘우씨!’

찬우는 기분이 나빴다.

“놀랐지? 어디 다치진 않고? 그러니까 계란은 손으로 들어야지.”

이런 말을 해줬다면 엄마가 참 멋져 보였을 텐데 반발심만 생겼다. 아니면 “또 그럴 거야?”라고만 물어도 충분히 반성을 할 텐데, 이젠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도대체 생각이 있냐구? 좋아. 내가 얼마나 생각 있는 아인지 보여줘야 돼.’

찬우는 곧장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아주 강력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집에서 나온 찬우는 개천을 따라 죽 걸었다. 집이 안 보이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갔다.

“엄마는 나 없이 고생 좀 해야 돼.”

찬우는 개천을 따라 띄엄띄엄 설치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서 투덜거렸다.

“유치원 때부터 계란 갖다 준 것만 해도 백 번은 넘을 거야. 근데 겨우 한 번 깨뜨렸다고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래. 사고 칠 때보다 안 칠 때가 천배 백배 많은데.”

찬우는 지금쯤 엄마가 반성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없어진 걸 알고 벌써 찾으러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흥, 어디 찾아보시라지.”

그렇지만 다리를 흔들면서 30분쯤 앉아 있었는데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찬우는 슬슬 걱정이 되었다. 자기가 너무 멀리 와서 엄마가 못 찾는지도 몰랐다.

“좋아. 처음이니까 내가 봐주는 거다.”

찬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 그렇지만 엄마가 찾아오려면 한참을 걸어와야 하는 거리였다. 애국가를 네 번쯤은 부르면서 와야 할 거리였다.

“더 이상은 양보 못해.”

찬우는 의자에 앉아 집 쪽을 바라보았다. 집을 보니까 마음이 놓였다. 그렇지만 또다시 30분 정도가 지나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자 찬우 코가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는 만큼 입도 조금씩 삐져나왔다.

“내가 많이 왔나? 좋아. 내가 쬐금만 더 봐준다.”

찬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 쪽으로 더 걸어갔다. 딱 절반만 더 걸어갔다. 그러니까 엄마가 애국가를 두 번만 부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조금 있으니까 할아버지 한 분이 찬우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녁 먹을 시각인데 안 들어가고 뭐하니?”

“가출했어요.”

“가출?”

할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힘든 결정을 했구나. 그런데 왜 그랬는지 물어도 되니?”라고 했다.

찬우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엄만 바보예요.”

“거 안 됐구나.”

“나보다 계란이 더 중요한 줄 알아요.”

찬우는 금방 서러움이 몰려왔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니?”

“할아버지가 우리 엄말 몰라서 그래요.”

찬우는 주먹을 쥐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내 생각엔 일단 들어가서 맛있는 것부터 먹고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자장면도 좋고, 떡볶이나 피자도 괜찮겠지.”

“싫어요. 엄마한테는 반성이 필요해요.”

“가출한다고 얘기는 했니?”

“아뇨.”

“쯧쯧. 실수를 했구나. 가출한다고 했어야 엄마가 반성을 할 텐데 말이다.”

할아버지 말을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몰랐다.

“그럼 내가 가서 알려주는 게 어떠냐? 난 집에 들어가는 길이니.”

찬우는 고민이 되었다. 이러다 엄마가 나오지 않으면 깜깜한 밤까지 밖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고 게임기를 가지고 나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만두세요.”

찬우는 더 버텨보기로 했다.

“할 수 없구나. 그럼 잘 있거라.”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엉거주춤 서서 찬우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엄마, 바보는 아니에요.”

“정말 다행이구나.”

찬우는 할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을 아쉽게 지켜보았다. 어쩐지 할아버지가 멀어질수록 엄마가 안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졌다. 그렇지만 찬우 얼굴만큼이나 어둡지는 않았다.

“쪼르륵.”

저녁 먹자고 배에서 신호가 왔다. 할아버지 말대로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곱빼기로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찬우는 참기로 했다. 엄마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쪼르륵.”

배가 또 신호를 보냈다.

“너 가만히 안 있어!”

찬우는 자기 배를 바라보면서 눈을 흘겼다.

“어유, 하여튼 엄마는 문제야.”

점점 어두워지자 찬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의자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초조한 마음을 두 손에다 모으고 ‘왔다리 갔다리’ 했다.

‘왔다리 갔다리’ 하자 찬우 마음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 찬우야!”

찬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빠였다.

아빠를 보자마자 굳어 있던 찬우 얼굴이 자동 우산처럼 확 펴졌다.

“우리 찬우가 마중 나왔구나?”

찬우는 얼른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가출했어요.”

“뭐?”

아빠는 놀란 눈치였다.

“엄만 날 너무 괴롭혀요.”

아빠가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씩 웃었다.

“그럼 나도 가출해야겠다.”

“네?”

“너도 알지만 아빠도 엄마한테 괴롭힘을 당하잖아. 어젠 똥 누고 물 안 내렸다고 혼나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야. 안 그러니?”

“맞아요. 아빠는 결혼을 잘못 한 거 같아요. 근데 엄마는 어떡해요?”

찬우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어떡하긴. 아빠도 없고 너도 없이 혼자 사는 거지.”

“그러지 말고 아빠는 들어가세요. 아빠는 엄마 남편이잖아요.”

찬우는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입에다 힘을 주었다.

“엄마한텐 아빠보다 찬우가 더 필요한 것 같은데? 곧 있으면 어린이날인데 선물을 누구한테 줘야 할지도 고민일 거고. 옆집에 사는 동동이한테 줘야 할지, 니 친구 수용이한테 줘야 할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기가 받을 선물을 동동이나 수용이한테 주다니,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아빠? 그럼 이번만 봐줄까요?”

“아빠야 찬우 편이니까 찬우가 하자면야 뭐.”

아빠가 양쪽 볼을 동그랗게 모으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찬우도 아빠를 따라 빙긋이 웃었다.

찬우는 이번 한 번만 엄마를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빠가 태워주는 목말을 타고 가면서 ‘텔미 텔미’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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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이성률씨
동화작가 이성률씨
●작가의 말

예전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무척 바쁩니다. 여러 학원을 다녀야 하고, 다녀와서는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누리거나, 가족과 함께 성장해야 할 시간에 달달 암기해야 하는 일에만 내몰립니다. 서너 달이 지나면 대부분 까먹을 것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 만큼 저는 아이들이 동화를 읽고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동화의 세계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았으면 합니다. 엄마 아빠는 그 곁에서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주시고요.

●작가 약력

전남 해남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세기문학 시부문 신인상.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당선. 서해아동문학상 수상. 시집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 교양도서 ‘목민심서’
2009-08-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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