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기능한국인’ 뽑힌 시계수리 명장 남재원씨
“처음엔 싫다던 내 두 아들도 시계수리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남재원씨
그는 “이공계를 기피하는 젊은 세대가 편한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지만 세상에 편한 직업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평생 배신하지 않는 기술의 길을 권한다.”고 말했다.
남씨는 “시계수리는 자격증도 특별히 필요없고 소자본 창업도 가능하다.”면서 “해외 명품시계 수요가 계속 늘어 젊은이들에게 유망한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하고 17세이던 1966년 전남 순천의 작은 시계점 ‘삼성당’에 입사했다. 이후 상경을 목표로 기술을 익힌 끝에 서울의 한 백화점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백화점들이 그를 잇따라 스카우트해 시계수리 기사로도 활동했다.
1992년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 점포를 열었다. 하지만 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2개월 전 시계판매점포를 열었다가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남씨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계공이 혼자서 작업을 할 때 매우 유용한 ‘마스터 펀치’와 ‘휴대용 시계의 압착식 조립공구’를 개발해 특허를 받기도 했다. 그가 고안한 ‘W확대경’, ‘시계부품 확대 영상 카메라’ 등은 시계수리 공정과 품 질향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남씨의 바람은 우리나라가 생산한 명품시계를 수리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일류 한국업체도 스위스와 일본 부품을 조립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서 “투자 없이 단기간 이익만 쫓는 시계 업계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2009-07-21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