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기태야아!/소중애

[엄마와 읽는 동화]기태야아!/소중애

입력 2009-06-01 00:00
업데이트 2009-06-0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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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어요. 엄마가 오셔서 텔레비전을 끄며 말씀 하셨어요.

“기태 좀 찾아 봐.”

내가 뭐 기태 찾아오는 사람인가요. 만날 나보고 기태 찾아오라고 하게. 만화 영화 보고 있는데….

“빨리 기태 찾아와. 저녁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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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귀찮아 죽겠어요. 베란다에 나가 밖을 향해 소리쳤어요.

“기태야아! 기태야아!”

이렇게 부르면 어디선가 기태가 나타나 손을 번쩍 처 드는데 오늘은 멀리 갔나봐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기 업고 서성이던 옆집 아줌마만 올려다 봤어요,

“기태 없어요.”

눈치를 보면서 텔레비전 앞으로 슬금슬금 갔어요. 엄마가 나물 무치던 일회용 장갑 손으로 현관문을 가리켰어요.

“나가서 찾아.”

아이 정말 짜증나요.

“현관 문 살살 닫고 나가.”

엄마는 내 맘 속을 훤히 들여다봐요. 마음을 들키는 바람에 쾅 닫으려던 현관 문을 살며시 닫았어요. 엘리베이터는 20층 꼭대기에 올라가 있네요. 아이 짜증나. 쿵쾅쿵쾅 5층에서부터 뛰어 내려갔어요.

“기태야아! 기태야아!”

코 찔찔이 바보 같은 게 어딜 쏘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놀이터에도 없어요. 아, 마침 기태 친구들이 있네요. 모래를 쌓아 올리며 놀고 있어요.

“야, 너희들 기태 못 봤니?”

“못 봤어.”

“우린 기태랑 안 놀아.”

“왜 안 놀아. 친구끼리 사이좋게 놀아야지.”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가려가며 사귀는 것은 좋지 않아요. 기태 친구들은 아직 학교도 안 다니니 1학년인 내가 가르쳐줘야 해요.

“기태는 바보잖아.”

“우린 바보랑 안 놀아.”

나는 깜짝 놀랐어요,

“기태가 왜 바보야?”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어요.

“오빠가 기태보고 바보라고 했잖아.”

“형이 기태 부를 때마다 바보라고 불렀잖아.”

내가 그랬던가? 기태는 코를 흘려요. 코 끝에 콧물이 매달려 있을 때가 많아요. 엄마는 기태가 코에 병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창피해요.

“넌 왜 바보같이 코를 흘려?”

옷도 항상 더럽히고 다녀요. 아침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저녁에는 집 없는 아이처럼 옷이 더러워져요.

“더러워 죽겠네. 바보같이 옷이 그게 뭐야?”

그러고 보니 나는 말끝마다 기태보고 바보라고 했네요.

“아저씨, 기태 못 봤어요?”

경비실에 가서 아저씨에게 물어봤어요. 아저씨는 경비실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내다보니 알 거예요.

“저 아래로 가더라.”

아저씨가 아파트 문을 가리켰어요. 기태가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고요?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바보 같은 게….

“기태야아! 기태야아!”

아파트문을 나가면 길이 세 갈래예요. 오른쪽은 학교 가는 길, 가운데 길은 시장 가는 길, 왼쪽으로는 유치원 가는 길. 기태는 학교를 싫어하니깐 오른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은 조금만 잘못해도 막 혼내고 손바닥을 때린단 말야. 기태 너는 한글도 모르니깐 학교에 가면 만날 혼날 거야.”

내가 겁을 줬거든요. 유치원으로 가는 왼쪽으로도 가지 않았을 거예요. 기태는 유치원에도 가기 싫어하거든요. 유치원, 도란도란 이야기 방에서 예슬이라는 애에게 뽀뽀했는데 예슬이 엄마가 쫓아와 야단쳤거든요. 난 기태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시장으로 가는 가운데 길만 남았네요. 난 시장에 가 본 적이 없어요. 우리 엄마는 아파트에 있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든요. 기태도 시장에 가본 적이 없을 거예요.

“기태야아! 기태야아!”

아 정말 짜증 나. 아무리 불러도 기태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시장 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퐁퐁 흘러나왔어요. 한발한발 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기태는 먹는 것을 좋아하니깐 어쩌면 냄새 따라 시장에 갔을지도 몰라요. 시장 가까이 가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시끌시끌 시끄러워지고 맛있는 냄새도 진해졌어요. 배에서 꼬르륵 꼬륵 먹을 것 달라고 졸랐어요. 떡볶이 가게의 떡볶이가 맛있게 보였어요.

“아줌마. 떡볶이 500원어치 주세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500원짜리 동전을 꺼냈어요.

“여기는 학교 앞처럼 500원어치는 안 파는데…”

하면서도 아줌마가 떡볶이를 줬어요. 시장 떡볶이가 학교 앞 것보다 맛은 있는데 더 매운 것 같아요. 호-. 떡볶이를 다 먹고 일어나면서 물었어요.

“아줌마, 내 동생 못 보셨어요?”

“네 동생이 누군데?”

“기태요. 왕기태. 키는 요만하고요. 좀 통통해요.”

손으로 내 가슴 쯤을 가리켰어요. 창피해서 코 흘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아줌마가 내가 먹은 떡볶이 그릇을 치우면서 고개를 저었어요.

“못 봤어. 그렇게 작은 애는 못 봤어.”

“기태야아! 기태야아!”

도대체 기태는 어딜 간 거지? 시장 안으로 더 들어갔어요. 비릿한 냄새가 훅 콧속으로 들어왔어요. 커다란 그릇 속에서 생선들이 퍼덕거리고 게가 부글부글 거품을 뿜고 있어요. 어? 살아있는 문어도 있네요.

옆으로 난 골목에는 둥근 수족관에서 새우들이 등을 구부리고 헤엄쳐 다녔어요.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네모난 수족관에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얘, 저리 비켜.”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내던 아저씨가 말했어요. 커다란 물고기가 뜰채 안에서 퍼덕거리는 바람에 내게로 물이 튀었어요. 아이, 짜증 나.

아무래도 기태는 시장에 오지 않았나 봐요. 돌아가야 겠어요. 기태가 이렇게 멀리 왔을 리 없잖아요.

“……?”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야 집이죠? 올 때는 길이 하나였는데 돌아서니 길이 여러 개예요. 새우 옆을 지나 커다란 그릇에 생선 퍼덕거리는 곳을 지나 걸었어요. 어? 그런데 이상해요. 아까 떡볶이 사 먹었던 가게는 보이지 않고 떡 가게들만 죽 있어요. 되돌아 걸으니 이번에는 생선 가게들은 없고 채소 가게들이 나타났어요.

“……”

아무래도 내가 길을 잃어 버렸나 봐요. 바보같이. 겁이 덜컥 나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바보같이 울면 안 되는데…

“어어헝. 기태야아. 기태야아. 엄마아 -”

그때, 어디선가 기태가 달려왔어요. 코 찔찔 흘리며 집 없는 아이처럼 더러워진 옷을 입은 기태, 내 동생이었어요.

“형아, 왜 울어? 누가 때렸어? 형아 왜 울어?”

기태가 내게 안겼어요.

“…기태야아.”

콧물이 척척하게 뺨에 닿았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더럽지가 않아요.

“형아, 떡볶이 먹었어?”

나는 뺨에 묻은 콧물을 닦는 척하면서 눈물을 닦았어요.

“형아, 떡볶이 먹었지?”

기태가 또 물었어요.

“어떻게 알았어?”

“여기에 고추장 묻었어.”

기태 손가락이 가리킨 가슴에 뻘건 떡볶이 국물이 묻어 있었고. 그 옆에는 얼룩도 있었어요.

“형아, 생선 먹었어?”

“아니.”

“형아한테서 생선냄새 나.”

나는 창피하지도 않았어요. 집에 갈 일만 걱정 되었어요. 또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형아. 집에 가자. 배 고프다.”

아무 것도 모르는 기태는 집에 가자고 했어요.

“……”

주위를 둘러 봤어요. 순대 가게에 돼지머리고기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요. 시장 속에 있는 가게들이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이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만 구경하고 집에 가자. 배 고프다.”

기태가 내 손을 잡아끌었어요.

“…너, 집으로 가는 길 알아?”

“그럼 알지. 만날 여기 와서 구경하고 노는데.”

기태야아.

기태에게 어깨동무를 했어요. 기태 키가 이렇게 큰가? 기태 머리가 귀 옆에 있고 팔이 위로 당겨 올라갔어요. 슬그머니 팔을 내려 기태 허리를 감쌌어요. 기태가 이렇게 뚱뚱했나? 손이 겨우 기태 옆구리에 닿았어요. 슬그머니 기태 손을 잡았어요. 따뜻하고 도톰한 손이었어요. 우리는 잡은 손을 흔들며 걸었어요. 기태는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 찾아 걸었어요. 아까 사먹었던 떡볶이 집이 나타났어요.

“동생을 찾았구나.”

떡볶이 아줌마가 웃었어요.

“아줌마 안녕 !”

기태가 인사했어요.

“저 아줌마 알아?”

“알지. 단골인데.”

어? 기태가 말도 잘하네요.

우리는 마주보고 씨익 웃었어요. 엄마한테 시장에서 떡볶이 사 먹은 것 비밀로 하자는 뜻이에요. 드디어 시장 골목길을 나왔어요. 우리 아파트가 보였어요.

“아저씨 안녕 !”

아파트 문을 들어서면서 경비실 아저씨에게 기태가 큰소리로 인사했어요.

기태가 인사도 잘해요 !

“안녕. 형이 널 찾았구나.”

“우리 형은 날 잘 찾아요. 우리 형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해요.”

‘…기태야아.’

나는 힘차게 손을 흔들었어요. 기태도 깔깔웃으며 잡힌 손을 힘차게 흔들었어요.

“기태야아. 기태야아.”

엄마가 베란다에 나와 기태를 부르고 있어요.

“엄마아아.”

우리는 엄마를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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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소중애씨
동화작가 소중애씨
●작가의 말

어렸을 때 자주 동생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아주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집 근처에서 찾았는데 어느 날인가는 아무리 찾아도 동생이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아저씨와 아줌마에게 내 동생을 봤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동생 키가 얼마나 크고 얼굴이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입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는데, 매일같이 봤는데도 말이에요. 나는 동생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동생을 만났을 때의 반가운 마음이 오늘 이 글을 쓰게 하였습니다.

●약력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82년 ‘아동문학평론지’에서 ‘엄지 병아리’로 등단했으며 ‘개미도 노래를 부른다’ 외 최근 저서로는 ‘선생님과 줌이 함께 쓴 교환일기’ ‘꼼수강아지 몽상이’ ‘거북이 장가보내기’ ‘ 잉카야 올라’ ‘작은 기적들’ 등 124권이 있다. 2009년 2월 초등학교를 퇴직한 뒤 현재는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해강아동문학상(1986). 중·한작가상(87), 어린이가 뽑은 작가상(94), 한국아동문학상(2002), 방정환 문학상(2004) 등을 수상했다.
2009-06-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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