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최근 열린 의료윤리위원회에서 ‘말기 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공식적으로 통과시켰다.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존엄사에 관한 법률도 없고 판례도 적은 상황에서 사회적 파장은 불가피하지만 서울대병원이 이를 감수하고 이 문제를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의료현장에서 더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이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암암리에 관행화돼 있다. 2007년 말기암환자의 85%(436명)는 환자 가족들의 심폐소생술 거부를 의료진이 받아들여 연명치료를 중단했다는 서울대병원측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진료현장에서 이뤄지던 연명치료 중단을 서울대 병원이 인정키로 한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환자입장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의견개진하게 된 것도 진일보한 일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결정이 얼마나 환자본인의 의지로 이뤄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립암센터가 17개 병원 1592명 사망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망환자의 93%는 심폐소생술에 대해 가족과 의논해 본 적이 없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생명 존중의 기본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로 인한 고통을 줄이려면 무엇보다도 환자 본인의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존엄사는 인정하되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절차적인 문제를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기암환자의 사전의사결정제도가 21일 있을 대법원의 존엄사 최종판결과 함께 존엄사 논란을 현명하게 풀 수 있는 법제도 논의의 분수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2009-05-20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