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다큐 시선]당신에게 ‘1만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뉴스 다큐 시선]당신에게 ‘1만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입력 2009-05-20 00:00
업데이트 2009-05-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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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권 지폐 속에 있는 세종대왕의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오묘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돈. 먹고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다. 이렇듯 ‘실용’의 최전선에 있다 보니 평소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우리에게 1만원권의 가치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별 걱정없이 펑펑 쓸 수 있는 ‘배춧잎’일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서너 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귀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만원의 의미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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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자장면 두 그릇 , 떡볶이 5인분, 햄버거 런치메뉴 3인분 정도를 먹을 수 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사 볼 수도 있고 멋진 비키니 수영복을 사 입을 수도 있으며, PC방에서 10시간 동안 웹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반대로 1만원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무궁무진하다. 현재 노동부가 정한 최저시급은 4000원. 어떤 직종이든 2시간 반을 일하면 1만원은 벌 수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할 수도 있다. 혹자는 건설현장에서 팥죽땀을 흘리기도 한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만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사연과 눈물은 무궁무진하다. 1g도 안 되는 이 초록빛 종잇장 하나로 사람들은 울고 웃고 화내고 심지어는 죄도 저지른다. 세상만사 온갖 삶이 이 작은 1만원권 안에 녹아 있는 셈이다.



●주부 “요즘 만원은 2~3년전 5000원 같아”

가정주부 권춘자(57·서울 은평구)씨는 18일 오후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ATM(자동인출기) 기계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뽑았다. 김치를 담그는 데 대파를 급히 사야 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물건은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사지만 급한 것은 상가에 있는 소형 마트에서 사기도 한다.

1200원짜리 대파 한 단을 산 뒤 권씨는 만원을 내밀면서 “요새 물가가 너무 비싸다. 요즘 만원은 2~3년 전 5000원 정도인 것 같다.”며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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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권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권씨는 “생명만큼 귀중하다.”라며 웃다가 이내 말을 바꿨다. “생명만큼 중요한 건 아니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정도다. 근데 요즘은 돈이 너무 없어서 살기 팍팍하다.”라고 말했다.

권씨가 대파를 산 마트 밖에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 택시기사 임재빈(53)씨는 반나절 동안 만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임씨의 돈통 안을 보니 죄다 5000원짜리와 1000원짜리다. 임씨는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돈이 많이 들어오는 날도 있고, 어떨 땐 만원 한 장 안 들어오는 날도 있고. 오늘은 일이 잘 안 되는 편이다.”며 힘겨워했다.

물가가 올라 요즘 만원은 돈도 아니라지만, 임씨가 ‘돈도 아니라는’ 만원을 벌기 위해 뛰어야 하는 시간은 2~3시간. 어쩌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시간은 더 길어진다. 임씨는 “사납금을 빼고 택시기사들이 그나마 먹고 살려면 한 시간에 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요즘은 1시간30분~2시간 정도 걸려야 벌 수 있다.”면서 “그나마도 출·퇴근 시간을 빼면 손님이 귀해 어떨 때는 2~3시간 걸릴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한 날의 ‘1만원’은 권씨에겐 눈물 그 자체다.

●택시회사 사장 “회사 유지 위한 원천”

100여대의 택시를 갖고 있는 택시업체 사장 박정연(가명·58)씨에게 만원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원천”이라고 말했다. 꼬박꼬박 돈을 입금해야 하는 기사들 입장에서 만원이 정말 큰 돈이라는 것을 박씨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200여명의 기사들이 입금하는 사납금 1500여만원을 매일 받고 있는 박씨 입장에서도 만원은 높은 벽이다. 박씨는 “직원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돈이나 세면 되는 줄 알지만 택시 교환부터 시작해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생각해보면 나름의 애환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가 상승률에 비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오르지 않는 택시요금이 있는 한 임씨의 회사 운영이 만만치 않다. 일반 승용차에 비해 30% 이상 싸긴 하지만 차를 끊임없이 새로 사야 한다. 박씨는 “택시 구입비가 얼마나 늘었는지 말도 하기 싫다. 그런데 택시 사납금은 10년 동안 고작 5000원 정도 올랐다.”면서 “만원이 아니라 단돈 몇천원 때문에 사납금을 못 채우는 기사들을 보면 안쓰럽지만 원칙은 원칙이라고 자위할 뿐”이라고 전했다.

●마트 알바직원 “카드결제 많아 구경 힘들어”

택시가 마트 앞을 떠나 큰길 쪽으로 나갔다. 큰길 옆에 있는 작은 슈퍼 안에서 직원 김모(여·32)씨가 일하고 있다. 김씨는 “아줌마 햄버거 없어요?” “저기 있잖아 햄버거~지난번엔 맛있게 먹었니?” 라며 꼬마 단골 손님들과 살갑게 얘기를 주고 받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만원짜리를 선뜻 꺼내는 손님이 줄지는 않았을까. 김씨에게 물어보니 “아예 돈을 잘 구경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유를 물으니 “요즘 손님들은 500원짜리 껌을 사도, 700원짜리 물 한 통을 사면서도 주로 카드를 쓴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는데 우리는 수수료를 물어야 하니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고 손을 내저었다.

김씨는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이 얼마냐고 물으니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며 멋쩍게 웃었다.

현재 노동부가 정한 최저 시급은 1시간당 4000원 남짓. 김씨가 1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2시간 반을 계속 서서 일해야 한다. 김씨는 “사회에 나와서 일하다 보니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평범한 얘기가 더욱 와닿는 거 같다. 있는 사람은 정말 많이 있고 없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고….”라면서 “이 동네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전형적인 빈촌인데 돈 한푼이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요즘 해외여행 가서 돈을 펑펑 쓰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초등학생에겐 군것질·놀이 수단?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초등학생 김호기(7)군에게 1만원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매일 받는 용돈 1000원을 만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려 열흘 동안 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한다. 김군은 “집에 아빠 친구들이나 할아버지가 오시면 만원씩 생기는데 몽땅 엄마한테 뺏긴다. 나중에 돌려준다고 하는데 엄마가 다 써버렸을지도 모른다.”고 툴툴거렸다. 그러더니 “설날 받은 세뱃돈까지 합하면 원래는 진짜 부잔데, 지금은 이거뿐이다.“며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보였다.

김군은 부모로부터 ‘돈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김군에게 돈은 그냥 군것질하고 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PC방에 가면 만원씩 맡겨놓고 다니는 애들도 있어요. 전 참다참다 1000원 내고 한 시간 노는데 말이죠. 만원이 지금 생기면 저도 PC방에 맡겨놓고 실컷 놀 거예요. 보너스까지 하루 더 받을 수 있어요.”

큰길 사거리에 있는 시중은행 지점에서는 영업을 마감한 은행원 김정임(28)씨가 돈을 세고 있다. 하루 동안 김씨가 만지는 돈은 얼마나 될까. 김씨는 “1억원 넘게 세는 날도 허다하다. 상가가 근처에 있는 데다 가끔 부동산 거래하는 분들이 현금으로 들고 와서 통장에 넣기도 하는데 통장 속에 있는 숫자로는 수십억원도 가끔 본다.”고 전했다.

돈을 보면 욕심은 생기지 않을까. 김씨는 ‘초년병 시절에 극복한 고민’이라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신입사원 시절에 돈 세는 걸 배울 때는 이 돈이 내 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거쳐가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오히려 은행에서 고객들의 돈을 만지다 보면 가끔 돈 냄새에 질릴 때도 있다.”고 한다.

글·동영상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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