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은 모녀사랑 여성학자

입력 : ㅣ 수정 : 2009-05-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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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숙희씨, 어머니와 팔순 그림전 열어
서울 합정동 ‘벼레별씨 카페’에 가면 아주 특별한 그림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 팔순인 한숙자 할머니의 전시회로 오는 10일까지 열린다. 7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팔순노인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그림들이 가득하다.

팔순 그림전을 연 한숙자(왼쪽) 할머니와 딸 오한숙희씨.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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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순 그림전을 연 한숙자(왼쪽) 할머니와 딸 오한숙희씨.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한 할머니는 “놀랍다.”는 주변 사람들의 감탄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래. 늙은이가 장난 논 거 가지고….”라며 발을 빼더니 이내 “잠깐이나마 붓을 들어 부엌과 자식 걱정에서 놓여나는 순간들이 쌓여가면서 내 인생은 활짝 피어났다.”고 자랑한다. 박재동 화백은 이번 그림전에 “새로 배우는 삶이 있는 한 여생은 없고 삶이 있을 뿐이다. 이 그림전은 인생이, 삶의 개념이 바뀌는 멋진 사건”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한 할머니의 인생은 그림을 그리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보통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레 남편이 죽으면서 홀로 4남매 뒷바라지를 했다. 69세 때는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다 막내 딸이자 대표적인 여성학자인 오한숙희(50)씨의 권유로 7년 전 이젤을 잡으면서부터 인생은 바뀌었다. 오한씨는 어머니가 직접 그린 그림 33점을 모아 이번 그림전을 열었다.

오한씨는 “11년 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말을 잃은 뒤 하루종일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는 날이 많았다.”면서 “그대로 두었다간 치매나 우울증에 걸려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오한씨는 고민 끝에 어머니를 이젤 앞에 앉히고 손에 붓을 들려줬다. 미대에 다니는 큰손녀의 화첩과 쓰다버린 물감을 만지작거리던 어머니는 꽃과 가족, 기억 저편의 고향마을을 흰 도화지에 슥슥 그려냈다. 강원도에서 두부공장을 하는 큰딸 부부도 그림에 담았다. 오한씨는 “이 그림전이 어르신들 가슴에 숨어 있는 꽃을 활짝 피워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오한씨는 어머니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전통적인 효도가 물질적인 봉양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적인 효도는 부모가 잊고 있었던 꿈과 욕망을 되찾아 주는 것 즉,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 “부모는 은혜에 답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주며 자극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존재”라고도 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2009-05-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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