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위안부 할머니 10년에 걸친 소리없는 투쟁

재일 위안부 할머니 10년에 걸친 소리없는 투쟁

입력 2009-02-21 00:00
업데이트 2009-02-2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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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큰 울림되어…다큐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않았다’

‘재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주인공이란 말에서 떠올릴 법한 어두운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어느 쾌활한 할머니의 힘있고 정감어린 호통과 노래가 있을 뿐이다

26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는 위안부 피해자로서 줄곧 일본에서 생활해 온 송신도(87) 할머니와 그녀를 돕는 일본 시민들의 10년에 걸친 재판투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딱딱한 기록물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다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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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나 기자회견 등에서 할머니가 펼치는 거침없는 증언과 좌중을 휘어잡는 노래, 할머니와 지원모임의 발전적 관계와 상처의 치유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워낭소리’를 이을 수작으로 꼽히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지점에서 감동을 자아낸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되 동정의 눈물이 아니요, 역사 및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되 어느 한쪽을 향한 미움·분노와는 차원이 다르다.

●송신도 할머니 10년간 재판과정 담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마세요. 전쟁 때문에 조선인만이 아니라, 중국인만이 아니라, 모두 어떤 나라 사람이든 모두 죽었어. 그러니까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마세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다름아닌 송 할머니의 통찰력과 호소력이다. 자신의 피해를 넘어서서 역사와 사회의 진실을 밝히는 발언들은 질곡의 세월을 관통해온 경험이 담겨 있기에 더욱 절절히 다가온다.

1922년 충남에서 태어난 송 할머니는 16세 때 부모가 정한 결혼이 싫어 혼례 첫날밤 집을 나왔다. “전장에 가면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은 할머니는 1938년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중부 무창의 한 위안소에서 ‘위안’ 행위를 강요당했다. 거부는 소용없었다. “싫다고 하면 얻어 맞고, 이유 모를 빚도 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 옆구리와 넓적다리에 남은 칼로 베인 상처, 팔에 새겨진 가네코(子)라는 문신, 군인에게 맞아 찢어진 고막 등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사이 사내아이 둘을 낳았다. 하지만 위안소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중국인에게 맡겼다. 1945년 일본 패전 뒤, 일본 군인의 꼬드김으로 그를 따라가지만, 하카타항에 도착하자마자 버림받고 만다. 그러다 우연히 재일조선인 하재은을 만나 그의 미야기현 집에 머무르게 된 뒤, 평생 그를 아버지로 모시게 된다.

송 할머니를 세상으로 이끌어 낸 것은 바로 일본 시민이었다. 1992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입증하는 정부 문서가 발견되자, 일본의 네 시민단체는 ‘위안부 110번’이라는 핫라인을 개설한다. 이때 익명의 제보자가 송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려오고, 이들 시민단체는 이듬해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한다.

이렇게 해서 1993년 4월5일 일본 국회와 총리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생존해 있던 재일 위안부 피해자의 최초이자 유일한 제소였다. 이 법정싸움은 10년 뒤인 2003년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패소로 끝이 났다. 하지만, 할머니는 말한다. “여러분, 정말로 나는 재판에 져도 마음은 지지 않았어요. 미야기현에 돌아가도 큰 배에 탄 마음으로 여러분의 얼굴 보아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 거예요.”

●딱딱한 기록물 아닌 감성 다큐…‘워낭소리’ 이은 수작

2005년, 지원모임은 할머니와 함께했던 소송과정과 강연 등의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안해룡 감독에게 작업을 부탁했다. 자료를 검토한 안 감독은 영화화를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지원모임은 곧 제작비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1년동안 일본 전역에서 6000만원이 모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는 2007년 8월 도쿄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최근까지 80여곳, 8000여명의 일본 관객을 상대로 상영이 이뤄졌다. 지원모임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할머니의 근황과 위안부 소식 등을 담은 회보를 내고 있다. 국내 개봉되는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배우 문소리의 내레이션을 만날 수 있으며, 수익금의 일부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에 기증된다.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2009-02-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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