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죽을 권리, 살아야하는 의무/이순녀 문화부 차장

[女談餘談] 죽을 권리, 살아야하는 의무/이순녀 문화부 차장

입력 2008-12-13 00:00
업데이트 2008-12-1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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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으로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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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문화부 차장
이순녀 문화부 차장
남자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유언했다.그리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공호흡기를 떼내고 눈을 감았다.신경장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았던 59세의 영국인 남자는 안락사 허용국가인 스위스의 병원에서 이른바 ‘원조 자살’을 택했다.이 남자가 최후를 맞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지난 10일 영국 TV에 방영되면서 국제 사회가 다시 안락사 논쟁에 휩싸였다.

12일 뉴질랜드의 한 신문은 자신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소생술을 쓰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문신을 가슴에 새겼다는 79세 할머니의 소식을 전했다.‘자발적 안락사’ 지지 단체의 회원인 이 할머니는 “언제,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언제,어디서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레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더불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도 포기한 채 무의미하게 연명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두가지 사건은 이런 고민을 한층 무겁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하는 최초의 법원 판결이 내려져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지난 11월28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75세 할머니의 가족이 낸 ‘치료중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존엄사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나라별로 안락사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여러갈래다.미국의 몇몇 주는 적극적 안락사를,프랑스는 제한적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지만 영국,독일 등 상당수 국가는 여전히 안락사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진정한 웰빙(well-being)은 웰다잉(well-dying)’이란 말처럼 자연스럽고 평온한 죽음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바람이다.하지만 현실은 ‘죽을 권리’와 ‘살아야 하는 의무’의 사이에서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생(生)이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듯 사(死) 또한 조물주의 고유 영역으로 끝까지 남겨둬야 하는 것일까.

이순녀 문화부 차장 coral@seoul.co.kr
2008-12-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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