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20년만에 돌아온 ‘모더니즘 기수’

사후 20년만에 돌아온 ‘모더니즘 기수’

입력 2008-12-12 00:00
업데이트 2008-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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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건 시전집 출간

전봉건(1928~1988)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무표정한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형형한 눈빛,앙다문 입,적당히 벗겨진 앞머리와 장발은 격동의 시대를 헤쳐오면서도 고집스럽게 모더니즘의 절대미학을 추구했던 그를 고스란히 얘기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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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모더니즘의 대표시인 전봉건이 한 권의 책으로 망라됐다.

‘전봉건 시전집’(남진우 엮음,문학동네 펴냄)은 무려 40쪽에 이르는 장시(長詩) ‘춘향연가’와 20편을 잇댄 장시 ‘속의 바다’를 포함해 모두 402편을 담았다.기존에 시집으로 나온 시는 물론,그저 각종 문예잡지 구석구석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전봉건의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봉건은 분명 서구 모더니즘의 피세례자였다.

‘피아노에 앉은/여자의 두 손에서는/끊임없이/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가/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가장 신나게 시퍼런/파도의 칼날 하나를/집어들었다’(‘피아노’)

중·고 국어시험 단골 출제 문제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시를 비롯해 ‘너’,‘북1’ 등 때로는 만져질 듯 풍성하게,때로는 저릿할 정도로 감각적인 언어와 관능적 서정을 담은 시를 발표하며 비슷한 또래인 김수영,김춘수,김종삼 등과 함께 단숨에 모더니즘 계열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전봉건에게는 평생을 관통해온 기억이 있었다.그는 평남 안주가 고향인 실향민 출신으로 ‘군번 0157584’를 달고 ‘중동부전선’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치렀다.1950년 1월 ‘문예’지에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고 불과 몇달 뒤의 일이다.

전쟁은 그에게 죽음과 파괴,상처,생명 등 심미적 감각의 날을 더욱 벼리게 만들었다.장시 ‘춘향연가’에서도 전쟁이 남긴 붉은 피의 이미지는 선연하다.

또한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수석(壽石) 애호가로서 남긴 56편의 연작시 ‘돌’에서도 마찬가지다.그는 ‘…나루터 찬물 속에서/삭은 뼈처럼 하얀/돌 하나를 건져냈다’(‘돌1’ 일부)와 같이 전쟁터에서 죽은 동료를 추모한다.

말년에 미완성으로 남긴 59편의 연작시 ‘6·25’는 전쟁의 비극에 대한 애도,죽음과 피에 대한 애도를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진행한다.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전봉건의 지명도와 시적 성취에 비해 지금까지 연구는 상당히 부족한 형편”이라면서 “전집의 출간을 계기로 아름다움을 갈망해온 존재론적 탐구자인 전봉건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8-12-1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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