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국제협력센터 서정민 통역사 ‘영어 달인’ 비법

입력 : ㅣ 수정 : 1970-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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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대로 들으면 말하기도 술술~”
“이렇게 피곤한 공부가 없어요. 하루라도 거르면 실력이 나빠지는 게 확연히 느껴져요. 매일 듣고 매일 받아 쓰고 매일 외워야 감각이 겨우 유지되는 게 영어란 녀석이더군요.”영어의 달인들이 한결같이 영어가 가장 쉬웠다고 입을 모으지만, 서정민(28) 대검 국제협력센터 수사관은 영어가 가장 어려웠던 공부라고 말한다. 스스로 영어와 ‘수천만번’ 전쟁을 치렀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드라마 등을 통해 영어듣기에 익숙해져야 말하기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서정민씨.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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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드라마 등을 통해 영어듣기에 익숙해져야 말하기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서정민씨.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서씨는 올해 초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한 뒤 4월 특채로 채용돼 대검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피나는 노력 때문일까. 서씨는 대검에서 손꼽히는 실력파다. 서씨의 통역솜씨에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근성에서 실력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조직의 알짜로 꼽힌다. 특히 서씨가 맡고 있는 의전 통역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서씨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외경험도 없다. 대학교 3학년 때 20일간 영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다. 학원을 다녀본 적도, 토익과 토플과 같은 영어공인시험을 따로 공부한 경험도 없다. 이런 서씨가 어떻게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는지 서씨에게 그 비결을 들어봤다.

미숙한 ‘말하기’의 원인은 미숙한 ‘듣기’

“영어 듣기와 말하기, 읽기, 쓰기 가운데 뭐가 가장 어려우세요?”

뛰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주변의 지인들은 영어를 잘 하는 비결을 곧잘 물어온다. 하지만 서씨는 대답하기에 앞서 이렇게 되묻는다고 했다. 서씨의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십중팔구 “말하기”란다.

“제가 가장 화나는(?) 대답이 ‘말하기’예요.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제대로 듣기를 못한다는 소리거던요. 제대로 듣고 있다면 말하기는 쉬워요. 결국 말하기를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듣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단지 자신이 ‘듣기는 좀 된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죠.”

영어를 제대로만 들을 수 있다면 말하기도 쉽다는 게 서씨의 지론이다. 서씨가 강조하는 ‘듣기’는 단순히 ‘듣고 해석하는 과정’이 아니다. 대화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가령,‘speak’,‘say’,‘tell’,‘talk’ 등은 똑같이 ‘말하다.’란 뜻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쓰는 표현이 다르다. 말하기를 잘 하는 사람은 이를 잘 구별할 수 있다.

만일 듣기에서 ‘말하다.’란 뜻에 천착해 해석만 하고 ‘역시 난 듣기를 잘해.’라고 착각해 끝내면 안 된다는 소리다. 듣기를 할 때마다 ‘이럴 땐 speak를 쓰고, 저럴 땐 say를 쓰는구나.’라는 폭넓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작정 해석에만 매몰되면 말하기 실력은 나아지기 어렵다. 미숙한 ‘말하기’의 원인은 미숙한 ‘듣기’에 있다는 게 서씨의 생각이다.

서씨는 상황을 이해하는 ‘듣기의 방법’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드라마(미드)를 추천한다. 단, 똑같은 것을 세 차례 이상 볼 것을 권한다.“저는 항상 미드를 보라고 사람들에게 말해요. 일상생활에서 상황에 맞게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죠. 처음엔 자막 없이 보고 다음에는 자막을 보면서 보면 좋아요. 물론 마지막은 역시 자막 없이 봐야겠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 나가면 ‘아,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말하면 되는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되요. 결국 미드를 들으면서 말하기를 배우는 셈이죠.”

서씨는 또 자신의 실력을 빨리 가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실력을 매일 측정하라.

사람들은 자신의 발음도 모른 채 영어를 배우고 있다는 게 서씨의 생각이다.“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정말 가관이죠.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남들이 듣는 제 목소리와 발음을 알아야 영어실력이 향상되는 겁니다.”

서씨는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아 ‘엉덩이를 누가 오래 붙이고 있냐.’는 식의 영어공부보다 일단 자신의 실력을 매일 측정해 듣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AP나 CNN의 뉴스를 직접 읽고 녹음해 본 뒤 외국인 앵커의 발음과 비교해 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서씨의 조언이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발음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공부하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느낄 기회가 필요하다.

서씨는 한국인이 흔히 겪는 ‘반쪽 영어’의 한계도 빨리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저도 해외 경험 없이 한국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니 어려운 책을 독해하거나 뉴스를 통역하는 실력이 좋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쉽게 쓰는 영어 실력이 부족했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죠. 저는 이를 극복할 시간이 필요해 대학원에서 1년간 휴학했어요. 어려운 것은 잘하는데 쉬운 것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죠. 쉬운 회화도 다시 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절름발이 영어를 피할 수 있죠.”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08-10-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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