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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9) 정교회 한국대교구 제2대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9) 정교회 한국대교구 제2대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문화전문 기자
입력 2008-06-18 00:00
업데이트 2008-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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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한국대교구는 다음달 20일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은퇴하는 초대 대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의 뒤를 이어 두번째 대교구장에 임명된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48·그리스) 대주교가 착좌(취임)하는 날이다. 일찌감치 한국 땅에 묻힐 것을 선언한 채 30여년을 정교회 사제로 한국에 살아온 그리스 출신 한국인,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의 뒤를 잇는 한국 정교회의 새 수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다름아닌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간곡한 부름으로 한국에 살게 됐다.‘한국 정교회에 힘이 되어 달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간청에 한국행을 결심해 한국에 사는, 정교회의 실력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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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소티리오스 대주교 뒤이어 새달 착좌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정교회 한국대교구 성니콜라스 대성당. 최고 수장의 착좌식을 앞두었으니 사제며 신자들이 바쁠 성 싶은데, 성당은 ‘뭔 일 있느냐.’고 되묻기라도 하듯 차분하기만 하다.

찌는 한여름 날씨에 약속 시간을 맞추려 마포경찰서 맞은편 언덕 길을 바삐 올랐더니 온몸이 땀 범벅이다. 땀이 말라갈 무렵 “용인에서 강의를 마치고 막 도착했다.”며 긴 수염의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웃음 띤 얼굴로 기자 앞에 선다.

목부터 발등까지 내려입은 검은 사제복을 보고 있으려니 식었던 땀이 다시 솟을 것만 같다. 길다란 사제복에, 지금은 가평 수도원으로 옮겨 살고 있는 소티리오스 전 대교구장의 모습을 겹쳐 본다. 두 사람이 많이 닮아 있다.

마치 기자의 속내를 훔쳐본 것처럼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전임 대교구장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토록 많은 것을 이룸은 기적이지요.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한국 신자들로부터 ‘영적 아버지’로 통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자신을 버린 고생 끝에 얻은 영예이지요. 같은 사제의 입장에서 존경스러울밖에요.”

한국의 소수종교 사제 대신 좀더 나은 형편의 나라에서 살 수 있었지만 끝까지 어려운 한국 땅을 고집한 선배 대교구장에 대한 공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정교회를 새로 이끌 이 중년의 대주교는 13년 전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청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1995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한국에서 전화를 하셨어요. 아무 인연이 없던 한국 정교회에 도움이 되어 달라는 청이었으니 당황할밖에요.”

그때만 해도 아시아 땅은 밟아본 적이 없는 그였다.2년여, 크리스마스 철마다 짬을 내 보름 정도씩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 한국인에게 정이 깊어감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한국을 알고 가까이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커갔다고 한다. 그의 한국행 역시 정해진 소명이었던 것일까.

사도 바울의 역사와 흔적이 절절하게 담긴 아테네 남쪽의 유명한 지중해 휴양지 에기나 섬 출신. 에기나 섬의 웬만한 이라면 다 아는 대가족의 농민 아들로 태어났다.10남6녀중 여덟째.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그 유명한 아페아 신전을 비롯해 사도 바울부터 이어진 그리스도교 교회의 유적들이 널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신앙심이 오죽할까.

어릴 적부터 정교회 사제가 될 생각에 신앙활동을 줄곧 했고 아테네대학교 신학과를 졸업, 사제서품을 받았다.

아테네 서쪽의 항구도시인 니케아-피레아 대교구청서 3년을 산 뒤 이집트 시나이산의 성카테리나 수도원에서 2년간 도서관과 성화갤러리의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성카테리나 수도원 도서관은 그리스도교 관련 도서관으로는 로마 바티칸 다음으로 오래되고 각종 성서의 사본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 성화갤러리도 초대교회 때부터 전해온 수천 점의 성화가 들어 있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귀중한 성서와 성화들이 가득 들어 있다는 도서관과 갤러리의 모든 관리며 순례객 안내를 맡았으니 정교회의 그를 향한 신뢰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시절 열쇠 50∼60여개를 항상 몸에 지닌 채 살았다고 한다.

“성카테리나 수도원 시절, 오랜 세월 숱한 희생을 딛고 살아 남은 성화며 성서들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치 극한 산고를 넘긴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어려운 고비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한국행은 정해진 소명 이곳에 묻히겠다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느닷없는 전화 통화에 고민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아테네신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로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1998년, 거리마다 성탄의 흥청거림이 절정으로 치닫던 크리스마스 이틀 전. 영국 옥스퍼드대학측의 신학과 학과장 제의와 캐나다 대교구의 대주교 추천을 미련없이 물리친 채였다.

“영국, 그리스 같은 곳에선 나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사제와 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길을 찾은 것이지요. 물론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영향이 컸고…. 돌이켜 보면 마음은 오래 전에 한국에 쏠렸던 것 같아요.”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대주교.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선 동·서 교회로 갈린 10세기 이전의 그리스도인이 살았던 모습 그대로를 회복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한국에서 그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도 교부들의 가르침이며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의 말씀들을 온전히 전하기 위함이다.

“강요 않는 믿음” 제대로 인식됐으면

“정교회는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주교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정교회를 한국인들에게 잘 알리기 위해 한국인 주교와 대주교 탄생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그리스 등지서 신학교육을 마친 한국인 사제가 7명 있지만 주교 자리엔 단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청평 수도원 인근에 설립할 정교회 신학교에 쏟는 정성이 각별하다.

용인 한국외국어대 그리스어·발칸어과 교수의 신분도 겸한 사제. 지난 2004년 이 학과가 처음 개설된 이후 줄곧 교수로 재직해 왔다. 신분이 알려지면서 언제부터인가 교수, 학생들 사이에선 ‘교수님’보다 ‘신부님’ 호칭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용인에서 강의에 열중하지만 금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정교회 서울교구청의 사제로 돌아온다. 최근 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신부님’이 학교를 떠날까 걱정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그리스 피를 받고 태어나 미국 시민권도 갖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한국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대주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아무 분란없이 한 지붕 아래 잘 살아가는 한국의 종교세계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단다.

“해가 갈수록 한국의 종교에 깊숙이 빠져들게 됩니다. 샤머니즘이며 소수의 민족종교가 거대 종교와 허물없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허튼 말이 아니다. 학생들과 함께 떠나는 답사며 여행 때 사찰이나 문화공간을 빼놓지 않고 일정에 꼭 넣는다.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 들여다 보기 위해서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최후의 만찬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며 섬김의 모습을 직접 보여 주었다는 세족(洗足). 대주교는 성경의 세족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농축된 핵심임을 늘 새기며 산다고 한다.

“민족이나 지위, 언어에 차별과 구별을 두지 않는 똑같은 사랑으로 변함없이 봉사, 봉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1960년 그리스 에기나섬 출생

1983년 아테네대학교 신학과 졸업, 사제서품

1985년 니케아-피레아 대교구청 봉직

1988∼1989년 이집트 시나이산의 성카테리나 수도원 도서관, 성화갤러리 관리, 순례객 안내 담당

1991∼1993년 미국 보스턴 홀리크로스 정교회신학교서 학업 계속, 뉴잉글랜드·뉴저지 사목

1993∼1996년 프린스턴 신학교서 교회역사 전공, 프린스턴 대학교서 ‘예술의 역사’ 관련 석사학위

1998년 아테네신학대서 박사학위,12월23일 한국정교회서 사목 시작

2004년∼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학과 교수

2008년 5월27일 정교회 세계총대주교청 시노드서 대주교 임명

2008년 7월20일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착좌 예정
2008-06-1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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