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의 영어 열기는 최고지만 실력은 바닥권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제 영국문화원과 케임브리지대학이 주관하는 영어인증 시험인 IELTS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응시자수 상위 20개국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이민·직업연수용 시험(GTM)에서 9점 만점에 5.21점으로 19위를 기록했다.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다.
한국에서 영어는 거의 신앙으로 여겨질 정도이다.‘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는 영어교육에 투자를 하는 부유층 자녀와 그럴 수 없는 소외계층 자녀 사이에 형성되는 ‘영어 격차’를 일컫는다. 학창시절엔 성적의 차이로, 어른이 된 뒤에는 취업이나 연봉과 승진의 격차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태교모임에 이어 영어 베이비시터가 등장했고 유치원의 대부분이 영어를 특기 활동으로 가르칠 정도로 영어조기교육이 생활화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영어교육에 지출하는 돈이 연간 15조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한글도 익히지 못한 유아에서부터 대학생, 직장인까지 온 국민이 영어에 목을 매달고 있는데도 이 지경이라니 영어열풍이 무색하다.
한국민의 영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단어나 문법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문법과 어휘시험을 학교에서 추방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 논리적인 말하기, 글쓰기를 평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영어공교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길 바란다.
2008-06-05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