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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in] ‘너를 보내는 숲’

[강유정의 영화in] ‘너를 보내는 숲’

입력 2008-04-26 00:00
업데이트 2008-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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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어떻게 극복할까요?

만해 한용운은 말했다.“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속의 삶은 정반대다. 만날 때는 그 사람이 떠날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작스러운 이별에 고통스러워한다. 떠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부재를 호소하며 가슴 아파할 뿐 다시 만날 기약조차 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렇게 바로 눈앞의 것만을 보고, 당장의 순간에 아파한다. 장삼이사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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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 붙잡아두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당신은 그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일본의 여감독 가와세 나오미는 이 질문에 대해 따뜻하고도 사려 깊은 답을 들려준다.

여주인공 마치코는 아이를 잃었다. 남편은 꽃대로 아내의 목 언저리를 후려치며 왜 아이를 지키지 못했느냐며 다그친다. 사실, 그 질문은 그녀가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했던 것이다. 여자는 고통을 감내하며 그렇게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마치코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지워 ‘마코’라 불리는 고집쟁이 치매 환자다. 칠십이 넘었지만 시게키상은 삼십삼년 전 세상을 떠난 마코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고통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에는 모가리라는 전통 의식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죽은 자를 잊고 보내주는 의식, 결국 사라져 버린 사람을 기다리는 상실에 빠진 자들의 의식이다. 영화 ‘너를 보내는 숲’은 이별의 고통에서 놓여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놓여나는 법은 자신을 고통의 나락에서 건져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떠난 그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헤어짐을 인정하고, 떠남을 긍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너를 보내는 숲’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나오미 감독은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는 시게키의 어려움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너를 보내는 숲’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대사 대신 매미의 울음소리, 바람소리, 숲을 가로지르는 계곡 물소리가 가득 찬다. 이 가운데서 주인공들은 소리죽여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고통스럽다거나 아프다고 말하지 않지만, 공기와 소리들은 감정을 잔뜩 안고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이 부재와 비움에 있다.2007년 칸 영화제가 이 영화에 심사위원대상을 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당신도, 나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부재에 아파하고 결핍에 슬퍼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은 누군가 소중한 이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죽은 지 33년이 되면 죽은 이가 완전히 이승을 떠난다고 한다. 이 떠남은 죽은 이에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평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죽음은 우리의 것이 되고 사랑은 완성될 것이다. 어렵지만, 보내는 것. 결국 그게 더 큰 삶의 윤리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2008-04-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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