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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입력 2008-04-01 00:00
업데이트 2008-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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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그룹·멤버」에 속은 어느 여인의 고발

「하이·틴」의 우상이 되고있는「보컬·그룹」「멤버」에게 유린당한 한 여인의 수기. 이 수기는「보컬·그룹·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여기 지적된 Y씨는 지금도 인기 절정의 「드럼」연주자. 필자 윤혜민양(가명·24)은 S대 1년때 그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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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말 믿었던 여대생(女大生) 본처 있는줄 모르고 임신

여학교를 나와 대학의 문에 갓들어선 나는 마냥 어리기만한 철부지였읍니다.

나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철부지 소녀들의 우상적인 존재였던 한「보컬·그룹」「멤버」를 사귀었읍니다.

현 K「그룹」의「리더」이며「드러머」인 Y씨였읍니다.

『혜민아 난 너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어린 나로서는 너무나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읍니다.

지방공연을 할 때마다 거의 반강제로 끌려다녔읍니다.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나를 아내라고 소개했읍니다.

부끄러웠지만 그이를 사랑했기에 내 가슴은 뿌듯하였읍니다.

정말 꿈 같은 시간들이 반년이나 지난 어느 날.

그와 나 사이에 뜻하지 않은 여자가 나타났읍니다.

그녀는 그의 부인이었읍니다. 그러나 그이는 그저 옛날에 동거하던 정도의 여자라고 얼버무리며 나를 달래는 것이었읍니다.

그이를 믿었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갖게되었고 그이는 월남에 장기 공연을 떠났읍니다.

그이마저 없어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불러오는 배를 안고 친구집을 전전해가며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읍니다.

따뜻한 집과 부모님이 계셨지만 이미 죄인이 된 나는 찾아뵐 수가 없었읍니다.

찬바람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나의 몸을 휘감던 작년 2월, 어쩔수없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S병원에 입원하여 딸 쌍동이를 9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조산하였읍니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도 그이가 본 부인이 있고, 그 부인한테도 딸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래도 아기 아빠가 아이들의 장난감과 아기들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줄 땐 저는 행복에 겨웠읍니다.

그러면서도 본 부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만은 어쩔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던 중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이가 돌아오셨읍니다.

아빠는 저와 아기들을 열심히 사랑해 주셨읍니다.

본 부인과 결혼한 그날도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부모님들도 집과 차를 사주는등 경제능력이 없는 그이를 위해서 많이 애써 주셨읍니다.

그때마다 그이는 본부인과 이혼하고 저와 정식 결혼을 하겠다고 했읍니다.

저는 본 부인의 아이들까지 맡아 기른다 해도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모든걸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읍니다. 그러나 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걸맞지 않는 것일까요.

그이에게 또 다른 제3의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도 항상 복잡다난 했읍니다.

본 부인의 말에 의하면 결혼식은 자기와 올리고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갈 정도로 그이는 바람둥이였읍니다.

저는 제3의 여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녀는 모 항공사의「스튜어디스」였읍니다.

그녀를 아기아빠가 월남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알았다고 했을 때 귀국 당시의 천연덕스러웠던 아빠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저는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었읍니다. 착하기만한 본부인은 그저 저를 달래며 위로해 줄 뿐이었읍니다. 그 부인을 생각 해서라도 그이를 그여자의 손아귀에서 빼내야만 했읍니다. 저는 그 여자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읍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기조차 하면서 자기는 단순히 「엔조이」로 아기아빠를 상대했을 뿐이지 오래 사귀고 싶지도 않다고 하였읍니다.

그뒤에도 그녀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엄마는 너무 상심하지말고 밥 잘먹고 기운차려 애들을 잘 보살피라고까지 하였읍니다.

그리고 아기아빠가 바람피면 알려주겠다고 했읍니다. 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아빠와의 관계를 계속하면서 그런 말로 나를 달랜 그녀.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읍니다. 단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이 S「호텔」과 D「호텔」등을 전전해가며 동거하고있는 것을 알았읍니다. 새벽4시부터 따라다니며 마침내 현장을 목격했을때의 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읍니다.

그이는 처음부터 본부인과 저에게 생활비라고는 조금도 보태주지 않았읍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3의 여인 나타나 이혼키로 했으나

두 가정이 충분히 쓰도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여자들과의 유흥비로 썼읍니다.

오히려 저의 집에서 「팀」을 만든다고 가져간 돈만도 상당하였읍니다.

집의 차마저 잡혀가지고는 그 여자와의 애정행각에 소비해 버렸읍니다.

드디어 더 견딜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읍니다.

그이가 이혼하자고 제의해 왔읍니다.

저는 공항으로 그녀를 찾아갔읍니다. 마침 그녀는 그이와 만나 얘기하고 있었읍니다.

세사람만이 이야기 할수있는 기회였읍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우리 아이들과 본부인의 아이들을 맡아 키울수 있겠냐고 물었읍니다. 그녀는 당황하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자신이 있다고 얘기했읍니다.

그뒤 가산을 정리하여 보니 그이는 내주위 사람들에게 말할수 없이 많은 빚을 지고 있었읍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것을 떠 맡아야만했읍니다.

채권자들이 그를 걸어 고소를 하게되면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서 였읍니다. 이왕 이렇게 된이상 그 여자와 그이가 결합해서 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빌었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여자는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자기는 직장이 있고 나이가 어리므로 아이도 맡을수 없고 결혼도 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아빠는 본부인을 달래 아이를 맡기고 말았읍니다.

본부인은 그렇게 되면 아빠가 자기가정으로 돌아오고 또 경제적 도움이라도 있을까 해서 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활비조차 주지 않고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다시 아이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저의 아이들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찢어진 가정을 다시 이을수도 없읍니다. 눈물 겹도록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저이지만 이제는 어쩔수 없읍니다.

다시는 사회에 나같은 불행이 없도록 비sms 마음에서 이 글을 썼읍니다.

1970년 7월 7일

윤혜민 드림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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