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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박세리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성

LPGA 박세리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성

최병규 기자
입력 2007-11-14 00:00
업데이트 2007-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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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 내 꿈이 이루어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오거스틴 월드골프빌리지 내의 골프 명예의 전당. 세계 골프사를 줄줄이 써 내려간 수많은 인물의 이름이 적힌 이곳에 ‘요술 공주’ 박세리(30·CJ)가 13일 마침내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 중 하나인 ‘현역 10년 활동’을 지난 5월 LPGA챔피언십에서 채운 뒤 6개월의 기다림 끝에 회원 명부에 이름을 새겼다. 여자 선수로는 1951년 베티 제임슨(미국)이 첫 이름을 적은 이후 32번째. 그 가운데 최연소 멤버다. 개인 통산 24승.

국민 시름 던 맨발 투혼

1997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수석으로 합격한 박세리는 이듬해 메이저대회 두 차례 우승을 포함,4승을 올리며 ‘슈퍼루키’에서 단숨에 특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두번째 메이저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US여자오픈에서는 물웅덩이에 걸친 공을 맨발을 물에 담근 채 그린에 떨구는 ‘투혼’을 발휘했다. 외환위기에 지친 국민들은 까맣게 그을린 그의 다리 밑에 드러난 하얀 발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

3000여명의 하객이 모인 가운데 대선배 낸시 로페스(미국)의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오른 박세리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회원이 된 소감을 밝혔다.

“모든 사람들이 제게 한국여자골프의 선구자라고 말했다.”고 운을 뗀 그는 “그러나 선구자가 된다는 건 어렵고 외로운 일이었다. 압박감도 여간 심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박세리는 “하지만 모두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간다고 생각하면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고 이게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후배들과 팬들에게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여자 어니 엘스

박세리에게 LPGA 투어는 놀라움과 환희, 그리고 좌절과 부활의 연속이었다. 대전 유성초교 때 투포환을 하다 골프로 돌아선 박세리가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LPGA Q스쿨을 쉽게 통과한 건 1997년.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는 “당시 나이키로부터 거액을 받고 투어에 뛰어든 아마추어 최강 켈리 퀴니(미국)를 제치고 박세리가 신인왕에 오를 것이라는 데 베팅을 했다.”고 회고했다. 베팅업계 통계로는 퀴니가 신인왕이 될 확률은 박세리보다 66배나 높았다.

당시 LPGA 투어 커미셔너 짐 리츠도 “박세리를 처음 봤을 때 어니 엘스를 떠올렸다.”면서 “어떤 운동을 해도 정상급에 도달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선수였다.”고 말했다.

98년 개막전부터 실패한 박세리는 ‘철수’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출전한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우승으로 극적인 반전에 성공한 뒤 이듬해에도 4승을 수확,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캐리 웹(호주)과 함께 LPGA투어의 ‘트로이카’로 급부상했다.

최근 2년 간의 시련은 그에게 가장 아픈 시간이었다. 명예의 전당 선배인 줄리 잉스터(미국)는 “타고난 재능에다 끝없는 노력, 기계적인 스윙 등 박세리는 최고였다.”면서 “하지만 시켜서 골프를 했을 뿐 자체를 즐기지 못한 게 긴 슬럼프를 불렀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되살아났다.2004년 5월 미켈롭울트라오픈 정상으로 명예의 전당 헌액 포인트를 모두 채운 박세리는 기나긴 3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이날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설’로 남게 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2007-11-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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