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올시즌 명예회복 다짐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

입력 : ㅣ 수정 : 1970-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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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공을 잡았다.1968년 휘문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하지만 선수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일찌감치 농구화 끈을 풀어야 했다. 실업 현대에서 은퇴한 뒤 현대건설에서 5년간 샐러리맨 생활도 했다.

이라크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다가 체육교사 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돌아왔다. 부임 전 모교 연세대에 인사차 들렀던 게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마침 비어 있던 농구부 코치 자리를 잠시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은 것.“정식 감독이 오면 당장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뜻밖에 찾아온 농구 장인의 일은 천직이 되고 말았다. 올해로 농구 인생 40년을 맞은 최희암(52) 전자랜드 감독 얘기다.

“자만을 버렸다”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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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

“내가 잘해서 성적이 나왔다고 착각했고, 교만했다. 그래서 프로 첫 도전에 실패했다.”최 감독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대학 최고 명장이자 농구이론가로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그였기에 더욱 의외였다.

1986년부터 16년 동안 ‘독수리군단’ 연세대를 이끌며 이름을 날렸다. 통산 300승과 20차례 넘게 정상에 섰다.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으로는 처음 우승했을 때가 하이라이트. 당시 선수 못지않은 인기를 끌며 CF도 찍었다. 하지만 프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꼴찌 모비스를 맡아 02∼03시즌 플레이오프까지 끌어올렸으나 다음 시즌 끝없이 추락, 스스로 지휘봉을 놓았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게 아니냐고 했더니 “절반의 실패”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프로는 시스템이 달랐는데 쉽게 생각했고, 성급하게 판단했고, 준비도 부족했다.”고 했다.

잠시 동국대를 거쳤던 그는 3년 만에 프로에 복귀했다. 전 시즌 겨우 8승을 올리며 바닥을 기었던 전자랜드의 전력을 정규리그 마지막 날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툴 정도로 끌어올리는 작은 성과를 이뤘다.

“젊은 세대에게 밀리지 않겠다”

최 감독은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하다. 불호령은 젊은 시절과 변함이 없다. 훈련장에서 소홀히 하면 실전에서 입이 아프게 떠들어봐야 효과가 없다는 게 그의 지론.

그렇게 가르친 제자들을 이제 프로에서 지도자로서 만나곤 한다. 유도훈 KT&G 감독과 강양택 SK 코치, 오성식 SK 전력분석 코치 등이다. 신선우 LG 감독 등과 함께 프로 최고 연배의 지도자인 최 감독은 “솔직히 세대간 격돌에는 신경이 쓰인다.”면서 “젊은 지도자들에게 뒤떨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하자는 생각뿐”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 인기가 시들해진 국내 농구에 대해 “이기고 지는 승부만 있을 뿐,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농구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가드면 가드, 센터면 센터 위치에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근성이 선수들에게 부족하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새 시즌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팀 주포 김성철과 조우현이 부상으로 개막 이후에나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 감독은 전혀 걱정하는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란다. “요즘 정말 새 시즌을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지난번엔 주전이 정해져 있었다면 이번엔 이홍수, 이한권, 정영삼, 한정원 등이 가세하며 누가 주전이 될지 나도 궁금할 정도”라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최 감독. 기대해도 좋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전자랜드의 ‘화려한 봄’을 읽을 수 있었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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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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