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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시대] 투자자 보호·공공정책 위축 ‘양날의 칼’

[한·미 FTA 시대] 투자자 보호·공공정책 위축 ‘양날의 칼’

입력 2007-04-11 00:00
업데이트 2007-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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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투자자-국가소송제<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뒤로도 찬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FTA가 체결되면,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도입되면 최고법인 헌법과 상충하며, 국내 공공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기우’라며 일축한다. 이같은 논쟁을 바라보는 국민들만 혼란스럽다.

ISD는 투자한 기업이 투자국 정부의 정책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 기업들의 중국 등 외국 투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ISD는 ‘양날의 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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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가능성 여부

논란은 FTA에 규정된 ‘투자’의 개념이 헌법이 정한 ‘재산권’의 개념보다 넓다는 데서 출발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국내 헌법은 단순한 기대 이익, 반사 이익 또 경제적 기회를 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데,FTA는 “투자는 수입 또는 이윤의 기대”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실현되지 않은 기대이익은 ‘투자’의 정의에서 제외하고 간접수용 범위를 최대한 제한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내법의 경우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 법으로 보상이 명문화돼 있을 때만 보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미 FTA는 “국가 조치로 투자자의 투자가 침해된 경우 국가는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어 국제중재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이길 경우 보상이 가능하도록 새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국내 투자자와의 평등권(헌법 제11조)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형성 성균관대 법대(헌법) 교수는 “ISD 문제가 위헌 문제로까지 이를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하위법 체계에는 다소간 상충될 소지가 있어 다른 국내법과 조화를 이루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 가능성은 조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한양대 법대(헌법학)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ISD 도입을 환영할 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고 속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협약을 통해 우리의 주권 일부를 양보한 것이며, 그렇다고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을 외국에 내줬다고 보는 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공공정책 무력화되나

ISD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제소 가능성 때문에 부동산정책 등 정부의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남영 민변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행정규제가 매우 복잡한 나라다.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오면 규제를 만드는데 이때 외국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면 문제가 될 수 있고,ISD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공정책을 입안, 시행할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의 견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반박한다. 부동산정책이나 조세조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소송대상이 될 수 있고, 예외적인 경우란 ‘극도로 심하거나 비례성(합리성)이 없는(extremely severe and dispropotionate)’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커 우려를 해소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최종협상 결과 총칙에 따르면 조세조치는 원칙적으로 협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며, 조세조치가 수용에 해당되는 경우 ISD가 적용되나,ISD 회부 전 양국 조세당국이 협의하는 절차를 마련한다고 돼 있다.

김성수 한양대 법대 교수는 “앞으로 공공정책이 위축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정책 자체를 펴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니까 문제다?

미국 투자자의 제소 경향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이 제도를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중국·아세안 등과의 FTA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제도인데,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땐 ISD 도입을 주장하면서 미국과는 안 된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ISD가 독소조항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김성수 교수는 “멕시코나 캐나다 등 관련 국들이 ISD 때문에 안 좋은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해체되지 않고 있는 건 ISD가 우려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변 소속 이찬진 변호사는 “ISD는 헌법 위반에 관한 사항에 해당돼 협정안에서 약정했다는 1개월간의 국내법 저촉 여부 검토에 따른 수정절차를 통해 전면 제외되거나 대폭 축소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은 없나

법무부는 외국인 투자자의 제소 우려로 정부의 규제정책이 위축되거나 배상책임을 지게 될 경우에 대비, 사전 ‘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전담기구를 운영할 계획이다.

협상 초기 시민단체들이 ISD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면서 간접수용의 범위를 제한하는 등의 결과를 이끌어낸 것은 평가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주는 논쟁보다 함께 대책을 마련할 때라는 지적이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투자분야 협정문 주요 내용 보니

▲투자자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국유화하거나 수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공공의 목적을 위해 국유화하거나 수용하는 경우 내국민과 비차별적으로 공정시장 가격에 따라 보상하도록 규정.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제도를 도입, 외국인 투자자는 협정에 따른 권리가 침해되고 피해가 발생한 경우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국제중재 제기 가능.

▲간접수용에 대한 국제중재 피소를 우려해 정부의 규제정책이 위축되지 않도록 수용에 관한 부속서를 둬 중재판정부에 간접수용의 명백한 판정지침 제시.

▲공중보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공공복지를 위한 정당한 정부정책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 명시.

▲조세정책에 대한 별도의 부속서를 둬 세금부과는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시. 특히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과 원칙에 부합된 조세조치와 비차별적 조세조치는 원칙적으로 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해 조세당국의 정책적 권한 보장.

■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

“현재는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협정문의 문구조차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의견을 밝히기가 어렵다.”

지난해부터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줄기차게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말을 아꼈다.

송 변호사는 9일 전화 인터뷰에서 “협정문에 조세 조치와 부동산정책이 간접수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인지, 아니면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명시된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공공정책을 대상으로) 제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부담일 수 있다.”면서 “법무부가 주요 입법 및 정책 결정 때 사전에 외국 투자에 대한 ‘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은 한·미 FTA가 우리의 공공정책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ISD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수용’에 대한 개념 정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말하는 수용과 FTA상의 수용(expropriation)은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헌법에는 수용 때 법률에 의해 보상받도록 규정, 관련 법이 없으면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표적 예가 그린벨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ISD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각국의 개별적인 사정이 자유무역만 갖고 부정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적 안정성 문제도 제기했다.“미국인 투자자가 국내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 사법부의 판단 대신 국제중재기구로 문제를 가져갈 경우 한국 사법부의 사법통제 권한 밖에 놓이게 된다.”면서 “이는 사법 질서의 상당한 변경이며, 법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결론적으로 ISD는 우리 헌법 질서와 충돌해 공공정책의 자율성과 신축성(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면서 도입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한·미 FTA가 타결된 마당에 대응책은 뭔지 물어봤다.

송 변호사는 “ISD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인 만큼 토론를 통해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바로잡을 의지가 정부에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ISD를 농업 등 다른 핵심 쟁점들과 재협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그동안 ISD와 관련, 최소한 동의권 선택과 국내법 적용 조항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2007-04-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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