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출판인생 30년… 순수문학 지킴이로
하고 싶은 일을 가슴 속에 담아 뒀다 하나씩 꺼내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뒤늦은 공부도 그렇고, 출판사 일도 그렇고, 백두대간 등정도 그렇다. 딱히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열정만은 놓지 않고 산다.허영심 문학과 지성사 이사
허 이사는 회계, 총무, 영업 관리까지 전체 살림을 책임지는 문학과지성사의 살림꾼이다.1993년부터니까 올해로 13년째다.‘살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특히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이다 보니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회계·총무·영업관리까지 도맡은 살림꾼
“문학과지성사 같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배우고 또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장점이기도 하다고 허 이사는 말한다.
허 이사가 출판업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고등학교 졸업 직전이었다. 서울여상 졸업반인 지난 1976년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진명출판사 경리부에 입사했다.2년 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파도’를 펴낸 홍성사로 옮겨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총무과장을 맡았다.7년쯤 일하다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는데 1년 만에 말아먹었다. 결혼하고 쉬고 있는데 옛 동료의 권유로 한국논단 창립 멤버로 참여, 다시 출판계로 돌아왔다. 이것이 인연이 돼 1993년 문지로 옮긴 뒤 지금까지 이어졌다.
“당시는 후배 세대로의 경영 승계를 위한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고, 바로 내가 맡은 일이었다.”
허 이사는 문학과지성사에서 회계를 전산화하고 조직과 업무를 체계화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일을 하면서 전문 지식에 대한 필요성이 커져 2004년 뒤늦게 전문대 경영학과에 입학, 만학도의 꿈을 이뤘다. 외환위기 직후 너나없이 힘들던 때, 기본급만 받으며 묵묵히 일해준 직원들과 도매서점들의 부도로 지불해야 할 잔고가 쌓여 가는데도 잔고 걱정 말라며 용기를 준 협력업체 사장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다. 이들이 바로 지금의 문학과지성사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출판사들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들로 여념이 없다. 문학과지성사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기본정신을 고수하면서도 대중적 정서와 필요에 좀 더 부합할 수 있는 다소 가벼운 책들의 발간을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불황을 타지 않는 어린이·청소년책에도 관심이 있다. 단, 문학과지성사의 명성에 걸맞게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어린이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인터넷세대를 겨냥해 오디오북이나 e북에도 관심이 있지만 한국에서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 걸맞는 한단계 높은 어린이책 발간
“출판일 자체가 섬세함을 요구하고 다른 산업에 비해 기혼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하나 보니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는 허 이사는 “출판계 입문은 타의로 했지만 지금은 출판일이 좋아서, 문학하는 사람들이 좋아 발을 뺄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웃었다.
입시생 아들의 새벽 밥을 챙겨 주는 그녀는 시간을 쪼개 지인들과 산을 찾는다. 백두대간은 내년 10월쯤 끝내고, 히말라야 트래킹도 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없냐고 묻자 “왜 없겠어요. 얼마전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더니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16명이나 되더라.”며 웃어넘겼다. 학교 다닐 땐 콤플렉스였지만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고 생각을 바꾸니까 극복되더란다. 허 이사가 세상사는 방법이다.
글 김균미 사진 이호정기자 kmkim@seoul.co.kr
■ 허영심 이사는
▲1958년 충북 단양 출생 ▲1976년 진명출판사 입사 ▲1978년 홍성사 총무과장 ▲1989년 한국논단 창설멤버 ▲1993년 문학과지성사 경리부장, 이사
2006-09-16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