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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작은 전쟁/심재억 사회부 차장

[데스크시각] 작은 전쟁/심재억 사회부 차장

입력 2006-07-28 00:00
업데이트 2006-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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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거대한 나라 미국과 맞붙는, 일견 가망없어 보이는 전쟁이다. 그러나 질 수 없는 전쟁이다. 병을 가진 모든 국민들이 더 좋은 신약을, 더 싸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FTA협상의 큰 틀에서 볼 때도 양측이 서로 중요한 교두보를 선점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전단(戰端)은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미국이 ‘FTA 싸움판’으로 물고 들어가면서 비롯됐다. 보건복지부가 26일 관련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양국의 물밑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연히 이후의 상황이 국민들 시야에 낱낱이 감지될 것이고, 그 지점에서 정당성에 관한 시비도 가려지겠지만 문제는 국민들의 기대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시장’과 ‘전쟁’을 국가경영의 두 축으로 삼는 미국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건강, 나아가 생존이 걸린 문제여서 그 절박함으로 따지자면 우리도 숨이 가쁘다. 이 쯤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통용되는 ‘전쟁’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정치인들의 말 중에 ‘결정적 이해(vital interest)’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흔히 외교적 수사가 그렇듯 이 말 역시 그 뜻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되짚어보면 ‘결정적 이해’가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간파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막강한 외교력을 앞세운 미국의 대외정치는 항상 이 ‘결정적 이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이 이해의 전면에 돈 잘 버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포진해 있음은 당연하다.

전쟁은 이 결정적 이해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좋은 전쟁(Good war)’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으로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을 주도했고, 여기에 소련의 팽창주의를 견제한다며 냉전체제까지 구축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이런 미국의 의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 무렵 애치슨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한국이 제발로 따라와 우리를 구해주었다(Korea came along and saved us)”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미국의 전쟁을 사업으로 규정한다.2003년 부시가 이라크 전후 복구를 위해 870억달러 규모의 전후복구 예산 승인을 요청했을 때 한 의원은 “그 돈을 회수할 수 있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적어도 미국의 관점에서는 적당하게 관리할 수만 있다면 전쟁만큼 이윤이 확실히 보장되는 투자도 없다.

지금, 어느 나라든 미제 의약품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와 FTA협상을 벌여 나가야 한다. 그런 미국에 한국과의 FTA협상은 ‘불퇴전’의 이익 의지를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오벨리스크’이기도 하다.

길은 그래서 더욱 험하다. 우리나라의 연간 보험급여비 24조 8000억원 중 약제비 점유율이 29.2%인 7조 2000억원에 이른다. 선진국의 두 배에 가까운 지출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14%씩 그 규모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의 3배에 이르는 증가율이다. 확실히 기형적이다.

‘전쟁’의 목표는 많다. 이겨야 하는 전쟁, 지지 않아야 하는 전쟁이 따로 있다. 그러나 일단 총성이 울린 뒤에는 명분보다 얻을 만큼 얻어내는 실리적 이해에 치밀해야 한다. 적어도 이 순간, 미국은 굶주린 한국인들을 위해 구호 밀가루를 퍼주던 옛날의 맹방이 아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고, 좋은 약들이 미제이고, 우리 의지로 질병을 취사선택할 수 없어 그 약제의 위력을 외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봉’노릇하면서 그 약을 쓸 이유는 없다. 미국에는 ‘사업’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사의 문제’인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이 전쟁에서 최소한 지지는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재억 사회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6-07-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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