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입맛/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입맛/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기자
입력 2006-05-02 00:00
업데이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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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수입 쇠고기는 냄새가 나고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남아 있다. 전두환 정권시절 잔머리를 굴린 덕분이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쇠고기를 수입해야 했던 당시 정권은 수입업체에 대해 애국심을 잔뜩 주입시켰다. 그러자 수입업체는 미국산 중하위품을 매입한 뒤 배에 싣고 한달여에 걸쳐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얼리고 녹이는 일을 반복했다. 개조차 고개를 내두를 정도로 미국산 쇠고기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 이러한 절차가 몇차례 반복되자 수입 쇠고기는 매장에서 아예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70,80년대 OB맥주가 크라운맥주를 압도한 이면에는 ‘크라운맥주는 쓰다.’라는 매터도가 한몫했다. 크라운은 고민 끝에 OB맥주보다 더 많은 카라멜을 첨가해 맛을 부드럽게 했으나 주당들의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가린 채 감별해본 결과, 소비자 10명 중 8명은 크라운을 OB로 오인했다고 한다. 최근 소주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처음처럼’의 열풍도 이와 유사하다.20도 알칼리수 저도주라는 시장 선점효과가 참이슬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참이슬은 소주맛을 간직한 희석소주의 한계가 20.1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참이슬은 물맛’‘처음처럼은 건강에 좋은 알칼리수’라는 세뇌된 도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입맛이 선입견을 극복하지 못한 사례다.

밥쌀용으로 수입된 미국산 칼로스 쌀이 시장에서 반품되는 등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시식회 참가자들이 “묵은 쌀 같다.”며 평가절하한 탓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유통매장에 직원을 파견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는 성명을 내는 등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찬밥신세가 됐다. 뜸이 든 뒤 금방 먹어야 제맛이 나는 칼로스 쌀이 찬밥에서도 찰기가 흘러야 하는 한국인의 입맛과 식생활 패턴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10여년 전 미국 허시 초콜릿 본사에 들렀을 때 일이다. 홍보관계자는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면서 한국시장에 상륙하기 위해 20년 동안 미군 PX를 통해 초콜릿을 공급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D-데이가 멀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칼로스 쌀의 1차 공세를 무사히 넘겼다고 해서 안심하기엔 이른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6-05-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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