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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억대연봉 화장품 아줌마의 비밀

[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억대연봉 화장품 아줌마의 비밀

입력 2006-05-01 00:00
업데이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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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情당당’ 고객 메이크업

어린 시절, 화장대에서 노는 것이 시시해질 때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화장품 아줌마’였다. 가방 가득 신기한 화장품을 갖고 찾아오는 날이면 괜스레 들떴다. 지금 여염집 아낙들도 해외 브랜드를 쓴다. 유통 비용을 줄여 값을 낮춘 화장품 판매장들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홈쇼핑 쇼호스트는 각종 미용제품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피부를 소중히 생각하는 여성들의 화장품 고르는 눈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로 한해에 억대의 돈을 버는 사람은 더욱 특별해 보인다. 매월 천만원 이상 번다는 ㈜태평양의 ‘아모레 카운슬러’ 김경희(오른쪽 두번째·49)씨와 이틀간 동행하며 ‘영업 비밀’을 들여다봤다.

●‘투자가 먼저’라는 정석을 지켜라

“천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죠. 하지만 그만큼 고객들에게 쓰고 있습니다.”‘아모레 카운슬러’란 고객을 직접 방문해 태평양이 생산하는 화장품을 판매하고 마사지나 메이크업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다. 전국에 약 3만 2000여명이 등록돼 있고 월 평균 소득은 1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 평균의 10배 이상 버는 사람의 생활은 호사스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버는 만큼 투자한다. 그에 앞서 먼저 투자해야 벌 수 있다.’라는 정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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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처음 만난 곳은 뜻밖에 인천 영흥도였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는 수요일마다 영흥도를 찾고 있다.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아도 되지만 서울에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이다. 한 음식점 주인을 첫 고객으로 시작으로 고객이 15명으로 불어났다지만 전체 고객이 300명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하루를 영흥도에서 보내는 것은 ‘과한 투자’아닌가 싶었다.

지난달 26일 이 섬의 한 펜션. 오후 2시가 되자 김씨에게 마사지를 받으려는 고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김씨가 꺼내든 화장품은 샘플이 아닌 개당 10만원 안팎의 정품. 개인 돈으로 구입한 것임에도 아낌없이 쓴다. 많은 시간에 비싼 제품까지, 고객관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묻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인구 3000여명가량의 영흥도 주민 모두가 잠정적인 고객이라는 생각이었다. 영흥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마사지를 마친 시간은 밤 9시50분. 돌아가는 길에 지난주에 들러 샘플을 건넸던 시장 상인들을 만났고 2명에게 40만원어치에 가까운 화장품을 팔았다. 영흥도의 고객이 17명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고객은 없다

세일즈로 성공한 사람들은 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한번 고객이 재구매를 하고 다른 고객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김씨의 사정은 달랐다.“오늘 제가 파는 화장품을 쓰던 사람이 내일이면 면세점에서 사온 화장품을 쓸 수 있거든요.”그래서 끊임없이 새 고객을 찾는단다. 매년 서울에서 판매 1위를 고수하고 전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비결이란 중단없는 고객확보였다.

다른 날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고객 집을 방문한다. 매일 10∼12곳에 들러 주문한 물건을 갖다주거나 수금을 하고 신제품을 소개한다. 고객과의 약속은 ‘칼같이’ 지킨다. 차를 몰고 다니지만 하루가 짧다.

그러면서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고객 경조사. 얼마전 8년된 고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달음에 달려가 부조금을 건넸다. 물론 문전박대를 각오하고 ‘맨땅에 헤딩’식으로 생판 모르는 아파트의 문도 두드린다. 요즘 느끼는 것은 처음 일을 시작한 18년 전보다 인심이 더 야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정과 신뢰의 조화

김씨는 자신의 영업 비밀을 굳이 말한다면 ‘정(情) 마케팅’이라고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다른 회사 화장품을 쓰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그냥 같은 여자로서 언니처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하면 제 진심을 알아준다고 생각합니다.”마치 수십년간 알아온 사이처럼 고객들을 대한다.18년간 만나온 고객도 있지만 단 몇개월만에 속 얘기를 털어놓을 만큼 금방 가까워진 사람도 있다.

훌륭한 영업 사례로서 다른 판매원들에게는 ‘우상’처럼 여겨지지만 자신은 영업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화장품을 한번 팔면 그만이라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약속을 지키더라고요.‘믿고 물건을 살 수 있겠다.’싶었습니다.”고객 얘기다.

믿었던 고객에게서 수백만원의 화장품 대금을 못 받고 낙담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더욱 믿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과 신뢰, 이 두 가지가 번지르르한 달변가도 아닌 그를 억대 연봉자로 만든 비밀이었다.

kkirina@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2006-05-0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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