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미국인이다”

“우리도 미국인이다”

이세영 기자
입력 2006-03-27 00:00
업데이트 2006-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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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새 이민법 제정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과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센센브레너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거센 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50만명의 인파가 모여 새 이민법안 반대시위를 벌였다. 앞서 밀워키와 피닉스, 애틀랜타에서도 23일과 24일 수만명이 참여한 이민자 시위가 열렸다. 상원 법안심의를 앞둔 정치권도 이 문제를 쟁점화할 태세다.11월 중간선거에 미칠 파괴력을 의식한 탓이다.LA타임스는 경찰발표를 인용,“60년대 베트남전 반대시위는 물론 역대 최대 규모였던 1994년 이민정책 반대시위보다 훨씬 많은 수가 모였다.”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시위”라고 보도했다.

히스패닉계가 대부분인 참가자들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운 채 성조기와 멕시코 국기 등을 흔들며 행진을 벌였다. 현장에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과 길 세디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민자 권리를 위한 일리노이 연합의 조슈아 호이트 사무총장은 “정치인들이 잠자는 거인을 발로 찼다.”면서 “오늘 집회는 이민자 시민권 투쟁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는 이민자 단체뿐 아니라 노조, 교계, 인권단체의 지지를 얻고 있다. 가톨릭의 로저 마호니 추기경은 성직자들에게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불복종 운동을 벌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시위는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행동의 날로 정한 새달 10일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법안 찬성측 움직임도 심상찮다. 워싱턴과 보스턴에서는 27일 국경통제 강화와 불법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는 이민법 지지시위가 예정돼 있다.

새 이민법안은 하원 법사위원장인 제임스 센센브레너 공화당 의원 주도로 지난해 12월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과 함께 교회 등 봉사단체의 인도적 지원까지도 불법화함으로써 교계와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28일 법안심의에 들어가는 상원은 자진신고한 체류자에 한해 일정기간 특정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한 외국인 임시노동자(guest worker) 제도 등을 담은 수정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계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 집단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민주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안 통과를 막겠다며 벼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 22일 “새 법안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공화당의 입장은 양분돼 있다.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 등 주류 보수파들이 안보 문제를 이유로 이민자 통제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재계 이익을 옹호하고 히스패닉의 표심을 잡으려는 현실주의 분파들은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말 그대로 샌드위치 신세다. 그는 25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새 이민법은 미국인에게 ‘열린사회’와 ‘법치사회’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절충안을 주문하고 나섰다.11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미국내 불법 체류자들은 대부분은 농업이나 건설·서비스 산업의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2006-03-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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