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비자금/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자금/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기자
입력 2005-10-04 00:00
업데이트 2005-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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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이 금강산 개발과정에서 50만달러의 남북협력기금을 포함, 비자금 70만 3000달러를 조성해 유용했다는 현대의 내부 감사보고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부회장은 자재값 부풀리기, 허위 공사 계약서 작성, 입금액 빼돌리기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현대측의 주장이다. 장부 조작을 통한 뒷돈 빼돌리기는 건설회사 임직원들이 비자금 조성 때 상투적으로 동원하는 수법이다.

‘전두환 비자금’‘노태우 비자금’사건에서도 확인됐듯 비자금 챙기기에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 재벌 총수에서 가정 주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딴 주머니’를 차려 한다. 최근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아줌마의 76%가 남편 몰래 쌈짓돈을 챙겨두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고의 권력자나 재벌총수의 최측근에 회계전문가가 포진하고 있는 것도 국가나 기업보다는 ‘주군’의 비자금과 무관하지 않다.

장부상 돈의 흐름이 국내외를 들락거리더라도 비자금을 조성하는 핵심 수법은 매출액을 과다 계상(SK글로벌)하거나 부채를 과소 계상(대우그룹)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오너가 공장을 신·증설하면서 입찰을 부칠 때 건설단가와 비자금의 합계가 입찰액이다. 발주회사나 수주회사 모두 장부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외관상 잘 드러나지 않는 공장의 한 부분이 부실할 뿐이다. 하청을 줄 때도 마찬가지다. 하청단가에 원청업체 비자금이 얹혀진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 ‘신뢰’가 첫번째 덕목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택건설업체들이 분양원가 공개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분식회계를 통해 형성된 검은 거래의 노출 우려 때문이라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기록상 확인된 비자금의 기원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다. 함경도 지방의 토호였던 태조의 재산을 국유화하지 않고 왕실재산으로 사유화하면서 왕의 비자금, 즉 통치자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선자금 의혹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한 재벌은 비자금을 수십년 동안 가꿔온 ‘저수지’에 비유하곤 했다. 불법 시비가 불거지면 오너가 ‘씀씀이를 아껴’ 모았던 저수지의 물을 조금 퍼줬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합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10-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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