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백의종군/김경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백의종군/김경홍 논설위원

입력 2005-06-10 00:00
업데이트 2005-06-1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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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균형자론은 숱한 파장을 몰고왔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달 31일에는 미국 국방부의 리처드 롤리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주미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동북아균형자론을 거론했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동북아균형자론은 한·미동맹과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서 “만일 동맹을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부차관보급 인사에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되는가. 아무리 쓴소리라지만 듣기에 거북하기 짝이 없다.

동북아균형자론은 한·미동맹과 양립할 수 없는 전략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초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균형자론을 거론했을 때는 전자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핵 등을 둘러싼 동북아의 질서는 그동안 크게는 한·미·일과 북·중·러가 맞물리는 형국으로 진행되어 왔다. 중국의 팽창을 미국과 일본이 견제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균형자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미국과 일본의 심기가 편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동북아균형자론이 국내의 반발과 한·미동맹에까지 파문이 일자 정부는 그 의미를 설명하는 데 진땀을 뺐다. 동북아균형자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위에서 그 역할이 있다는 설명은 애교에 가깝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천영우 외교정책홍보실장의 균형자 해석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그는 동북아 역내 균형자인 우리나라와 세계적 균형자인 미국이라는 두겹의 균형자가 있다고 했다. 또 동북아 역내의 최후의 균형자는 미국이라고도 했다. 이쯤 되면 말이 말을 만들고,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도 이해가 됨직하다.

최근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동북아균형자론을 주제로 군수뇌부들에게 한 강연내용은 그나마 정리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과, 독창적인 학익진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주변강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은 약하지만 이순신의 지혜와 국민의 신뢰를 갖춘다면 충분히 균형자와 조정자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전쟁터가 되었다는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말로 인해 괜한 평지풍파만 일으킨 동북아균형자론은 이제 접고, 구국과 백의종군의 정신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2005-06-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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