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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인생반환점/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생반환점/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04-12-22 00:00
업데이트 2004-12-22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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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오래 산 사람보다 뭔가를 이룬 사람을 기억한다. 시대에 따라 특정인물에 대한 선악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흠이 있긴 하나, 그의 삶의 길이보다는 깊이를 따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태초 이래 가장 오래 산 사람에 대한 기록이 어느 역사서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가 모차르트·슈베르트·멘델스존·쇼팽이 인생이 짧아 업적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며, 김소월·윤동주·김유정·박인환이 요절하는 바람에 주옥같은 시와 글을 남길 수 없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그들이 역사에 남은 것은 피와 땀에 젖은 열정으로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남보다 백배 천배 이상 천착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궤적을 통해 나이는 먼저 태어난 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도 업적은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어제 통계청이 ‘2002년 생명표’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3세, 여자 80세라고 한다. 친절하게도 기대여명(평균잔여수명)을 따질 때 남자는 37세, 여자는 41세가 ‘인생 반환점’이라는 계산도 내놓았다. 생명표를 보면 40대 중반의 기대수명은 30년으로 나와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10년 가까이 지나친 입장에서, 만감은 아니더라도 여러 상념에 잠기는 것은 흐르는 세월 탓만은 아닐 것이다. 불혹(不惑)을 훌쩍 지나 지천명(知天命)이 코앞에 다가오는데도 이룬 것이 없어 가슴이 짓눌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신문에 이름 석자 오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에 욕심을 너무 부리는 것은 아닌지…. 여생이 짧다고 느껴져 다급한 생각에서 공돈이라도 한탕 크게 벌어 볼 요량으로 로또복권에 자꾸 눈길이 가 서글픔이 밀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일순간의 인생역전보다는 진솔하게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성으로 돌아와 이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른다.

평균수명만큼 산다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0년을 얕은 삶으로 초조하게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라톤이야 코스가 정해져 있어 반환점이 중요하겠으나, 종점이 언제 어딘지 모르는 우리 인생에서 그 반환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인생의 중간평가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말 일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4-12-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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