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파란 도장/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파란 도장/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04-12-13 00:00
업데이트 2004-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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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상품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어딘지 찜찜하다. 푸줏간에 내걸린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파란도장’을 찍어 등급을 표시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해서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조직들은 ‘다면평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 대한 등급을 ‘종합적으로’ 매기고, 그 결과는 연봉이나 인사 등에 반영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개성, 잠재력을 도외시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살다 보면 이렇듯 알게 모르게 수도 없이 찍히는, 공식·비공식적인 파란도장들을 피할 길이 없다.

고금(古今)을 통해 수많은 인간평가 방법들이 있으나 중국 한(漢)무제때 역사가 사마천의 평가법은 2000년이 흐른 현 시대에도 단연 반짝인다. 불우할 때 누구와 친했으며, 가난했을 때 탐취하지 않았는지, 부자가 됐을 땐 누구에게 나눠 줬는지, 높은 벼슬에 올랐을 때 어떤 사람을 등용했으며, 궁지에 몰렸을 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등이 그의 평가항목이었다. 평가법이 점잖기도 하거니와 사람의 내·외면을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들여다 보도록 항목을 구성했는지 놀랍다. 그의 평가법은 시대를 넘어 파란도장으로서 위력을 발휘해 왔음은 물론이다.

현대의 개인별 능력 측정에 자주 활용되는 지능지수(IQ)·감성지수(EQ)도 따지고 보면 제법 과학적이고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측면의 신식 파란도장임에 틀림없다.EQ의 아류(亞流)격인 ‘시체지수’(CQ:Corpse Quotient)란 것도 있단다.

군중이 모인 공연장 같은데서 주변 분위기에 얼마나 잘 호응하느냐를 측정하는 지수로, 손뼉을 안치고 환호성도 지르지 않는 뻣뻣한 모습을 보이면 이른바 ‘시체’라는 얘기다. 현대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할 수 있는 몸짱(신체)·얼짱(용모)·마음짱(심성) 같은 유행어는 아예 ‘최고등급’만 대접해 주어 기를 죽인다.

최근에는 브라질 상파울루 의대의 어느 박사가 섹스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성지수’(SQ:Sexual Quotient)란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밀스러워야 할 요철(凹凸)의 범주까지 등급을 매기겠다고 하니, 인간은 인간에게 어디까지 파란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릴런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4-12-1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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