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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성실과 한탕주의/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성실과 한탕주의/손성진 논설위원

입력 2004-06-05 00:00
업데이트 200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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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이란 말이 사회의 지향점이었던 때가 있었다.“열심히 참고 일하라.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위정자들은 사탕발림의 말로 성실을 강요했다.국민들은 묵묵히 따랐다.노동자,농민들이 공장과 논밭에서 쉼없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내일에 대한 기약 때문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나.사실 열매가 맺어지긴 했다.속이 꽉 차지 않고 덜 익은 열매였다.그것이라도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의 몫으로 돌아갔는가.수십년간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가 실현되었는가.그렇지 않다.성실을 믿고 따라온 노동자 농민에게 남은 것은?아무것도 없다.가구당 3000만원의 빚과 신용불량의 딱지,백수 신세,OECD회원국중 10년간 자살 증가율 1위라는 기록….남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손성진 논설위원
열매는 누가 따먹은 것일까.‘가진자’들이다.부(富)는 한 곳으로 몰렸다.중소기업은 죽어가는데 재벌은 공룡처럼 몸집을 불렸다.단칸방을 언제 면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아파트 값은 수억원씩 올라버렸다.내집 마련의 꿈은 언제까지나 아득한 꿈이다.신용불량자는 줄지 않는데 한달에 1000만원 이상 카드를 쓰는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더욱이 5000만원 넘게 쓴 사람은 작년보다 80.5%나 늘었다니.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어섰는데도 왜 대다수 국민들은 빈곤을 느끼는가.다수가 잘 사는 정책을 펴지 못한 탓이다.성장만능주의의 소산이다.성장의 과실은 부유층 몫이었고 대다수 국민은 배고픔에 허덕인다.한 연구소가 조사해 보니 49.5%가 가정의 경제 상태가 불만스럽다고 했다.“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성장주의자들은 경제교본을 들고 목청을 높인다.경쟁을 통해 도태시킬 것은 시켜야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까지 겪었던 ‘못가진자’의 희생을 또 강요하고 있다.가진자만이 더 잘 살겠다는 집단이기주의다.아파트 20층에서 아이를 던지고 죽든 말든 관계없다는 것이다.

못가진자들은 이제 성실을 믿지 않는다.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는 더 이상 아니다.개미처럼 일해 한푼 두푼 모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이는 연속적인 저축률 하락,자조적 풍조,근로 의욕 상실로 나타났다.성실이 통하지 않을 때 사회는 아노미에 빠진다.노리는 것은 ‘한탕’이다.한탕주의는 이미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자신도 모르게 한탕 욕구가 마음을 점령했다.로또 광풍,10억 만들기 열풍은 그래서 나왔다.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서는 ‘대박’을 손에 쥐긴 어려운 까닭이다.

범죄도 한탕주의다.몇백만원어치를 터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납치,유괴를 해서 몇억원을 뜯어내려 한다.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을 갈취한다.몇십억원씩 회사돈을 털어 해외로 줄행랑을 놓는 것은 예사다.고위층을 사칭해 수억원씩 가로채는 것도 가장 흔한 사기수법이다.고시열풍도 ‘한탕주의’라 할까.취업은 어렵고 직장을 얻어도 신분이 불안하니 고시로 인생역전을 시도하는 것이다.지난 3일 보도된 전직 증권맨의 사기극은 ‘한탕의 집합체’같은 사건이다.증권사 직원 K씨는 고객 돈 7억원을 맡아 주식투자로 한탕을 노리다 모두 날렸다.다음에 택한 것이 공무원 시험이다.번번이 낙방하자 마지막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을 사칭해 거액을 뜯으려다 붙잡힌 것이다.

다시 성실로 돌아가자.가진자들은 못가진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과거에 다 성실했다는 것은 거짓일 수도 있다.그러나 가진자의 부귀는 못가진자의 희생을 딛고 얻은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이제 돌려줄 때가 됐다.경제·사회적 정책이 그쪽으로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성실이 통하는 세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그러면 한탕주의는 저절로 물러갈 것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04-06-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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