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풍속도/경제불황…짐싸는 고시생 는다

고시촌 풍속도/경제불황…짐싸는 고시생 는다

입력 2003-03-17 00:00
업데이트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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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가뜩이나 민감한 고시촌이 최근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뚜렷한 불경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짐을 싸서 고시촌을 떠나는 수험생들이 늘어나자 고시원은 수험생 잡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학원·서점·식당 등의 고시업계는 역설적으로 가격 인상을 통해 불경기를 타파한다는 전략이다.경기가 더 나빠지면 고시촌의 공동화 현상도 우려된다.

●수험생,고시촌을 떠난다

공무원시험과 자격시험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지만,고시촌 상주 수험생의 감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한달 평균 70만∼8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고시촌 생활을 감당하지 못해 짐을 싸는 수험생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동영상 강의 등 시험공부를 하는 방법도 다양해져 상주할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다.사법시험과 행정·외무고시 등 주요시험의 1차시험이 끝나면서 고시촌을 떠나 대학 고시반이나 집으로 ‘U턴’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수험생 이모(26)씨는 “고시촌 수험비용은 평균 70만∼80만원선이어서 만만치 않다.”면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모님께 무작정 손을 벌릴 수 없어 1차시험이 끝난 뒤 대학 고시반에 등록했다.”고 말했다.수험생 김모(31)씨는 “고시촌의 공부환경이 나빠지고,정보수집이 쉽다는 장점도 줄어들고 있다.”면서 “시험이 임박했을 때만 고시촌에서 생활하고,시험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지방출신 수험생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고시촌의 수험생은 지난 98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급격히 줄어들었던 적이 있어 고시업계에서는 제2의 불경기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도 출혈경쟁 자제해야

고시촌을 떠나는 수험생은 늘고 있는데 고시관련 업체는 증가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수험생을 주고객으로 하는 신림동 식당과 서점 등은 무모한 ‘출혈경쟁’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다.

고시관련 서점들은 지난달 27일부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자,그동안 10∼20%까지 할인해 주던 고시관련 서적을 모두 정가에 판매하고 있다.한 서점 관계자는 “기존에 치열한 할인경쟁으로 서점의 수익성이 나빠졌다.”면서 “도서정가제를 지키는대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식당 50여곳도 지난 1월말 부터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다.한달 밥값은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식권은 100장당 20만원에서 22만원으로 각각 올렸다.식권 한 장당 2200원꼴이다.식당을 운영하는 최모(62)씨는 “고시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지난 6년동안 가격을 올리지 못해 적자운영중인 식당이 대부분”이라면서 “식당의 안정적 운영과 서비스 개선을 위해 가격 현실화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험생 박모(29)씨는 “식당과 서점이 가격을 인상했지만,서비스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수험생 중심으로 인식전환

고시학원들은 보다 많은 수험생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비용 저효율’로 수험생들의 불만을 샀던 고시원과 원룸 등도 내부공간을 수리하거나 가격을 인하하는 등 ‘수험생 붙잡기’에 나섰다.

유명강사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그동안의 운영시스템에서 벗어나 수험생들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전략으로 바꾸고 있다.학원들은 수험생 중심의 ‘맞춤형 강의’를 개발하는가 하면 내년도 사법시험 변화에 대비해 전문강사 등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학원 관계자는 “기본강의와 집중강의,판례강의,조문정리강의 등 수험생들의 학습수준 등을 고려한 세부강의를 마련하고 있고 시험시기별로 다양한 강의내용으로 종합반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내년도 사법시험부터 어학선택과목이 토익과 텝스(TEPS) 등 공인검정기관에서 인증한 영어성적 제출로 대체됨에 따라 기존의 고시영어강사 대신 토익이나 텝스 등의 전문강사를 섭외해 강의를 개설했다.

관계자는 “수험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면서 “수험생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고시촌을 찾는 발길도 다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2003-03-1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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