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씨 가족의 슬픈 인생역정…형제 4명은 北으로 4명은 南으로

백기완씨 가족의 슬픈 인생역정…형제 4명은 北으로 4명은 南으로

입력 2003-02-19 00:00
업데이트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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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의 죽음은 단순히 우리 가족의 비극이 아니고 우리 민족에 분단을 강요한 외세의 폭력이자 역사의 비극이야.”

재야운동가인 백기완(白基玩·사진·71) 민족문제연구소장은 17일 새벽 큰형 기성(78)씨를 폐질환으로 잃은 슬픔 앞에서 한맺힌 가족사를 읊어내려 갔다.

백 소장은 “우리 식구는 북에 4명,남에 4명으로 나뉘어져서 60년 가까이 서로 편지조차 주고받을 수 없었다.”며 애통해했다.

특히 백 소장의 큰형 기성씨와 한국전쟁 당시 산화한 둘째형 기현씨 형제는 한국전쟁 당시 총칼을 겨눌 정도로 분단된 조국의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기성씨는 분단 이후 홀로 북에 남아 황해민보기자 생활을 한 반면 기현씨는 24세이던 지난 51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해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산화,형제가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걸었다.

기성씨는 한국전쟁 후 57년 월남했지만 곧바로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여년간 옥살이를 했다.이후 통일에 대한 염원을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 호랑이’를 통해 나타내겠다는 생각으로 사진과 자료,관련 민족신화를 30여년간 수집해 ‘민족서’를 내려고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백 소장은 “큰형이 죽기 며칠 전에 전화를 해서 금강산 육로도 뚫렸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이유로 평생 마음 속으로만 통일을 염원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고 울먹였다.

백 소장 역시 지난 67년 고(故)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출범시켰고,현재 그 맥을 이은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백 소장은 “통일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람인데 몸이라도 기증하겠다는 형의 뜻을 따라 19일 발인 후에 형의 시신을 강남성모병원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2003-02-1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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