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할아버지,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DMZ’

책/ 할아버지,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DMZ’

입력 2002-11-22 00:00
업데이트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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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로 가는 기차나 버스는 없다.DMZ는 어디일까.어떤 이는 서울 북쪽에 있다고 했다.어떤 이는 그곳이 높은 산이라고 했다.넓은 들판이라고 했다….그곳은 막연히 남한의 북쪽 끝에 있었다.”

가깝고도 먼 땅,멀고도 가까운 땅 DMZ가 한권의 책 속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강원일보 논설위원인 함광복씨가 DMZ 연구에 매달려온 20여년의 소사(小史)를 담은 책이다.

오매불망 북의 고향을 그려온 실향민이라면 울컥 울음부터 치솟고 말 제목,‘할아버지,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이스트워드 펴냄).

지은이가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듯한 커다랗고 멋진 그림”에 비유한 책 갈피속 DMZ는 우선 서럽도록 목가적이다.그가 언젠가 만난 실향민 할아버지의 기억을 빌리자면,그곳은 지난날 금강산행 전기열차가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녘을 지나곤 했었다.왼쪽으로 신계천.패천,오른쪽으로 명파천.북천을 거느린 남강이 있었다.믿을 수도,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도 있다.장수하늘소와 연어가 지천으로 널렸고,오래되고 아름다운 성 ‘고미성’(古美城)이야기는 DMZ의 서슬 속에 전설로 갇혔다.

20여년을 부지런히 다리품 팔아가며 챙긴 기록 속의 DMZ는 종국엔 늘 엄연하고 냉혹한 현실이 되어 마침표가 찍힌다.“낙엽이 떨어지는 바스락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흙탕물이 흘러온다면 가까운 상류에서 토목공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속수무책으로 잊혀지는 자잘한 이야깃감이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도 한다.강원도 양구가 고향이었던 화가 박수근의 일화.1950년 금성교회 신자였다가 공산당에 쫓겨 남행길에 오른 박수근이 김화 남대천 DMZ에 그림단지를 묻은 후일담은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앞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에 책은 모두 6개 장으로 짜여졌다.때로는 다큐멘터리같고,또 때로는 애상짙은 기행문이다.그러나 행간행간에는 생생한 ‘현장 육성’의 울림이 가시지 않는다.젊음의 한 허리를 비무장지대 언저리에 미련없이 묻은 지은이의 열정 덕분일까.

1979년 강원도 양구군 해안분지에서 일어난 민통선 토지분쟁 사건을 계기로 함씨는 DMZ와 민통선 문제를 화두로 붙들고 살았다.1988년 한국민속사대관에 방대한 분량의 ‘민간인 통제구역’항목을 기술하는 중책을 맡은 것도 그 열매였다.주변 자연생태계에도 관심이 많아 DMZ 관련 학술 심포지엄에 단골로 참석해온 건 물론이다.한국 DMZ 생물종다양성보전협회 등을 앞장서 만든 것도 그다.

에필로그에 이르면 마음약한 독자는 참았던 눈물이 솟구칠지도 모른다.“고미성도,연어도,장수하늘소 이야기도 다 허풍이었다.”며 지은이는 그 모두를 DMZ의 전설로 돌리고 만다.세상사람들이 그곳을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고민없이 이름붙이는 것도 영 마뜩찮다.어렵고 조심스럽게 DMZ를 연구해온 그의 관점에는 “벌판 가득 지뢰가 민들레 꽃씨처럼 뿌려진,전쟁생태계의 전시장”이기 때문이다.1만 1000원.

황수정기자 sjh@
2002-11-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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