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있은 일이다.
호시탐탐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앞쪽에 앉은 남자가 일어섰다.안타깝게도 그 자리는 내 쪽에 절반,내 옆에 서있는 남자 쪽에 절반씩 걸쳐 있었다.앉을까 말까를 망설이는 찰나,옆에 선 남자가 툭 밀치며 잽싸게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20대 후반의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앉자마자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꽉 감아버린다.
출퇴근 시간 붐비는 버스에서도 ‘마땅히’남의 자리인데 완력으로 밀쳐내고 염치없게 엉덩이를 들이미는 젊은 남자가 적잖아졌다.‘튼튼해 보이는 아줌마라서 그런가?’하는 심정이 든다.이 대목에서 남자들이여,의당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시길.
똑같은 요금 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똑같이 격무에 시달렸을 텐데,여자라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약자의 ‘현대적’정의에 따르면 그 대상은 노인 환자 어린이 장애인 그리고 임신부 정도다.때문에 ‘그냥 여자’는 아니다.
다만 한 TV광고의 ‘지하철편’에 출연한 남자 수험생 같은 상큼한 패기와 여유가 요즘 젊은 남자들에게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생긴다.밤늦게까지 학원강의에 시달렸을 법한 그 학생들은 텅 빈 노약자석 앞에서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며 졸음 겨운 두 눈을 부비면서도 자리를 비워둔 채 서서 가지 않던가.멋지게 씨익 웃으며.
젊은 남자들은 일단 자리에 앉으면,만성피로 탓인지 대체로 곯아떨어지거나 ‘귀찮은 일’을 우려한 듯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노약자석에서 밀려난 노약자들이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오죽하면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는 사람들은 10대 여학생이거나,20대 여자라는 이야기가 있을까.
30대인 나는 발딱발딱 일어나는 편이다.학창시절 한 선생님과 있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 2학년 봄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반 담임 선생님과 함께 버스에 탔다.오래간만에 걸어다녀 피곤했는데 자리가 없었다.마침 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금방이라도 내릴 듯 정류장마다 목을 쭉 빼고 앞을 살폈다.그렇게 5분쯤 됐을까,어느 정류장에서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뛰어갔다.냉큼 앉으려고 자세를 잡는데 뒤통수 쪽에서 “할머니,이쪽으로 오세요.”하는우렁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똑같은 요금 내고 타는 버스니,자리에 앉으면 어린이나 노인들이 타는지 잘 지켜보고 자리를 내주도록 해라.”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너무 피곤해 지하철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싶어질 때마다 쟁쟁하게 귀를 울린다.
문소영기자
호시탐탐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앞쪽에 앉은 남자가 일어섰다.안타깝게도 그 자리는 내 쪽에 절반,내 옆에 서있는 남자 쪽에 절반씩 걸쳐 있었다.앉을까 말까를 망설이는 찰나,옆에 선 남자가 툭 밀치며 잽싸게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20대 후반의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앉자마자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꽉 감아버린다.
출퇴근 시간 붐비는 버스에서도 ‘마땅히’남의 자리인데 완력으로 밀쳐내고 염치없게 엉덩이를 들이미는 젊은 남자가 적잖아졌다.‘튼튼해 보이는 아줌마라서 그런가?’하는 심정이 든다.이 대목에서 남자들이여,의당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시길.
똑같은 요금 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똑같이 격무에 시달렸을 텐데,여자라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약자의 ‘현대적’정의에 따르면 그 대상은 노인 환자 어린이 장애인 그리고 임신부 정도다.때문에 ‘그냥 여자’는 아니다.
다만 한 TV광고의 ‘지하철편’에 출연한 남자 수험생 같은 상큼한 패기와 여유가 요즘 젊은 남자들에게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생긴다.밤늦게까지 학원강의에 시달렸을 법한 그 학생들은 텅 빈 노약자석 앞에서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며 졸음 겨운 두 눈을 부비면서도 자리를 비워둔 채 서서 가지 않던가.멋지게 씨익 웃으며.
젊은 남자들은 일단 자리에 앉으면,만성피로 탓인지 대체로 곯아떨어지거나 ‘귀찮은 일’을 우려한 듯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노약자석에서 밀려난 노약자들이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오죽하면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는 사람들은 10대 여학생이거나,20대 여자라는 이야기가 있을까.
30대인 나는 발딱발딱 일어나는 편이다.학창시절 한 선생님과 있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 2학년 봄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반 담임 선생님과 함께 버스에 탔다.오래간만에 걸어다녀 피곤했는데 자리가 없었다.마침 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금방이라도 내릴 듯 정류장마다 목을 쭉 빼고 앞을 살폈다.그렇게 5분쯤 됐을까,어느 정류장에서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뛰어갔다.냉큼 앉으려고 자세를 잡는데 뒤통수 쪽에서 “할머니,이쪽으로 오세요.”하는우렁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똑같은 요금 내고 타는 버스니,자리에 앉으면 어린이나 노인들이 타는지 잘 지켜보고 자리를 내주도록 해라.”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너무 피곤해 지하철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싶어질 때마다 쟁쟁하게 귀를 울린다.
문소영기자
2002-10-24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