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노벨 의학상 斷想

[녹색공간] 노벨 의학상 斷想

황상익 기자
입력 2002-10-21 00:00
업데이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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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10월이 되면 우리나라 의학 수준이 노벨 의학상을 받을 만한지,뒤처졌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이 부쩍 늘어난다.

여러가지 요인이 의학 연구의 질과 수준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중에도 연구인력,연구비,그리고 연구의 방향이 중요할 것이다.우리나라 의학 연구인력의 자질은 기본적 지력과 능력 등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사람의 능력을 이것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입 수능시험 성적을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문제는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조직하여 어떤 성과를 거둘지인데 한 사회의 가치관과 더불어 투자가 큰구실을 한다.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의학 연구비 투자는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적다.

30여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버나드 박사 팀은 세계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하였다.그 수술은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었다.그 지식과 기술의 과학성과 진보성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면 이 경우에 달리 생각할점은 없을까.버나드 박사 덕택에 남아공의 의학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것인가.또 그러한 세계적 기술을 개발하는데 쓰인 투자는 무조건적 정당성을 갖는가.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과 지식만 따로 떼어 보아서는 안 될 것이고 한 사회와 국가,더 넓게는 세계 전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심장이식수술의 성공으로 많은 환자가 생명을건진 것은 사실이지만,남아공의 일반 국민들과 인류 전체의 건강 향상에는 얼마나 기여하였을까.온 인류의 건강 증진 측면에서 보자면,지난 1992년 미국에서 “지난 50년간 출판된 책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책”으로 선정된 ‘침묵의 봄(Silent Spring)’(1962년)을 통해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생명의 위기를 경고함으로써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레이철 카슨이 버나드보다 더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적 수준,노벨 의학상 논의에는 대개 이 부분이 빠져 있다.2차대전 이후에 노벨 의학상을 휩쓸다시피 하는 미국의 의료수준은 어떤가.지식과 기술만으로는 단연 세계 으뜸이지만,전체미국인들의 건강 수준은 결코 세계 제일이 아니다.

우리의 보건의료 현실은 어떤가.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그런데도 치료,재활,복귀 및 보상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도시빈민의 건강실태는 어떠한가? 질병이환율이 중산층의 두배가 넘는다는 그들이 번영을 자랑하는 현대적 병원을 얼마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 나날이 파괴되어 가는 우리의 환경은 또 어떠한가.이런 실정에서 세계적 수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사물을 우리 현실에 근거하여,우리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겠다.과연 무엇이 세계적 수준이고 보편적 가치일까.우리 문제의 해결과는 무관한 무슨 세계적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면 세계적이 되는가.월드컵 4위가 국민 체력과 건강 4위를 보장하는가.선택된 일부 사람만 초현대적 시설에서 세계적인 의료진의 시술을 받고 세계적인 의학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사회와,국민 모두가 특히 소외당해 온 농민과 도시빈민과 노동자가 의료의면에서도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 중에서 어느 쪽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일까.

우리 현실의 보건의료문제를 철저히 연구하고 풀어나갈 수 있을 때,그 의학이야말로 민족적이고 민중적일 뿐만 아니라 ‘진실로 세계적인’수준의 의학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2002-10-2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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