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양심적 병역거부’ 찬반논란 확산

NGO/ ‘양심적 병역거부’ 찬반논란 확산

이창구, 이영표 기자
입력 2002-07-16 00:00
업데이트 200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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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병역 문제처럼 강한 폭발력을 갖는 이슈를 찾기란 쉽지 않다.본인이나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으로 인기 절정의 가수가 국내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고위관료들이 현직에서 낙마하기도 한다.각종 선거에서도 병역문제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종교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 역시 ‘병역기피자’라는 멍에를 쓰게 된다.그러나 올초부터 본격화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사회의 시각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무엇보다 사법부의 판단이 유연해졌으며,종교적 신념뿐 아니라 이념의 자유를 내세우며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도 나타났다.양심적 병역거부가 확산되면서 찬반 논란도 거세다.

◇확산되는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는 불교신자 오태양(28)씨가 마련했다.오씨는 입영일이었던 지난해 12월17일 “신앙과 신념에 따라 입대를 포기하고 사회봉사에 전념하겠다.”며 병역거부를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만의 문제로 치부됐던양심적 병역거부가 오씨의 선언 이후 종교계와 시민단체 사이에 새로운 ‘인권 문제’로 부각됐다.

평화인권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 3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지난 2월 발족한뒤 꾸준히 운동을 벌여왔으며,대체복무제 입법안도 마련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공공의 양식이 허락하는 한 종교적 이유에 의한 양심적인 병역거부는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지난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8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석,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이에 힘입어 유엔인권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각국이 시행하고 있는 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법부의 유연한 판단= 법원은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구속’과 ‘3년형 선고’를 관행처럼 지켜왔다.그러나 올해부터는 ‘불구속’이나 ‘보석’,‘선고연기’등의 판결이 많아졌다.

오태양씨의 경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2차례에 걸쳐 기각됐다.서울지법 동부지원은 지난달 19일 오씨의 첫 공판에서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병역법의 위헌 여부 판단을 기다려보자.”고 밝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재판을 연기했다.

광주지법도 최근 정모(28)씨의 선고공판을 무기한 연기했으며,조모(20)씨에게는 직권보석 결정을 내려 석방했다.

지난해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248명 가운데 83.3%가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았다.이는 군 복무기간보다 긴 3년형을 선고했던 관행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을 만큼의 ‘맞춤 형량’으로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기준인 현행 병역법은 지난 1월 말 법원에서 위헌제청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논쟁은 계속=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하는 쪽은 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군대 내 인권과 복지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분단에 따른 군사주의와 특정 종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1600여명의 젊은이가 아직도 감옥에 있는 현실을 고쳐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착잡한 심정으로 고위층 자제의 병역기피를 목격한 많은 국민들도 호의적이지 않다.

서울대 법대 성낙유 교수는 “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존중해야 하지만 우선공동체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도 현역 복무와의 형평성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병역거부 유호근씨 “동족에 총부리 겨눌 수 없습니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을 제 양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종교 문제로 병역을 거부한 종전 사례와 달리 ‘비종교적’이유를 내건 병역거부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평화운동가로 알려진 유호근(27)씨는 입영 당일인 지난 9일 군 부대로 가지않고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의 소신을 지키겠다.”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유씨의 결심에는 지난해 12월 오태양씨의 선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대학 시절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던 유씨는 언론에서 오씨의 병역거부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평화인권연대’에 연락,자문을 구했다.지난달에는 인터넷 모임인 ‘양심적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모임’에도 가입했다.

현재 민주노동당 서울 동작갑 지구당 사무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씨는 95년부터 통일문제연구소의 ‘흥사단 아카데미’에서 활동했고,99년에는 민간차원의 ‘평양 숭실 방문단’을 결성하는 등 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당초 방위산업체 산업기능요원을 지원,현역 복무를 대신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4주간의 군사훈련 때문에 포기했다는 유씨는 “내 소신과 양심에 반하지 않는다면 더 긴 복무기간과 더 어려운 조건이라도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대체복무 등을 통해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자식을 결코 감옥에 보낼 수 없다.’며 펄펄 뛰시던 아버지도 이제는 내 소신을 존중해 ‘끝까지버텨내라.’고 격려해 주신다.”고 했다.유씨는 “하지만 아직 내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하고 계신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 국군장교를 꿈꿨다는 유씨는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는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지 말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내가 용기를 얻은 것처럼 나 하나의 행동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소신과 양심을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대체복무제 입법안을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온 시민단체들에게 지난 4일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는 무척 뜻깊었다.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공동 주최한 이날 공청회에서는 연대회의가 마련한 대체복무제도 입법안이 공개됐다.

병역법을 개정하는 형식을 취한 입법안은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역을 기존의 보충역 종류에 추가하는 방식을 택했다.공익근무요원,공중보건의사,산업기능요원 등 현재 실시하고 있는 7가지 보충역에 대체복무역을 새로 포함시킨 것이다.

복무 영역은 군사적 성격을 띠지 않는 사회복지시설 봉사 업무로 정했으며,보건복지부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규정했다.보충역의 기초군사훈련을 위한 교육소집에서 대체복무요원을 제외하는 대신 직무 교육을 받도록 했다.복무기간은 36개월 이내로 정했다.

연대회의는 대체복무요원 판정 절차법도 만들어 대체복무자 판정절차,관할기관,병역기피 방지 등을 명시했다.

절차법은 대체복무 문제를 총괄하는 대체복무위원회를 두고 중앙 및 지방위원회,군복무 중인 사람의 대체복무 신청을 받는 특별위원회 등을 설치토록했다.대체복무위원회는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방부와 병무청과는 별도로 보건복지부에 속하도록 했다.

대체복무 신청 사유로는 종교뿐만 아니라 윤리·정치·평화주의·인도적 사유까지 포괄하는 양심적 이유로 정했다.입영대상자는 징병검사후 30일 전까지 신청토록 했으며,군복무 중인 사람도 입영 후 1년 이내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병역 거부를 이유로 처벌된 사람의 사면복권도 규정해 놓았다.

입법을 주도한 박서진 변호사는 “현행 병역법상 공익근무요원에는 예술체육분야 복무자,개발도상국 지원 업무자 등도 포함돼 있어 대체복무제 도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면서 “대체복무가 병역기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 나간다면 대체복무제가 조속히 정착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2002-07-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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