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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한국인 월드컵 열기’ 좋기만 한 것인가/특별대담

저자와 함께/’한국인 월드컵 열기’ 좋기만 한 것인가/특별대담

입력 2002-06-28 00:00
업데이트 200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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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the Reds’를 새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많을 때는 700만명이나 되던 거리응원단.그 ‘붉은 물결’을 거리에서 혹은 TV로 지켜보는 4800만 한국인은 물론 재외교포들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외국 언론을 비롯해 길거리 응원에 동참한 외국인들도 한결같이 한국인들의 단합한힘에 찬사를 보냈다.그러나 그것만이 진실의 전부일까.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朴露子·29)교수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귀화한 한국인이다.이토 준코(伊東順子·41)씨는 한국에서 12년째 살면서 일본을 오가며 저널리스트로 일한다.박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이어 최근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이상 한겨레신문사)를,이토씨는 지난달 ‘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개마고원)를 각각 펴내면서 한국인에게 우정어린 충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한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이들은,여느 외국인과 달리 ‘월드컵 현상’을 대체로 냉혹하게 비판했다.이들의 주장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부분도 적지않겠지만 우리에게 입에 쓴 보약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싣는다.

■피부색 구분 말고 ‘우리 모두' 포용하는 사회로…

박 교수와 이토씨를 만난 26일은 한국팀이 결승 진출 문턱에서 안타깝게 좌절한 그 다음날이었다.대학로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그들은 지난밤 ‘붉은악마’의 열기를 온몸으로 겪었다.‘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비판’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차 노르웨이에서 일시 귀국한 박 교수는 25일 밤 대학로에 위치한 ‘수유연구소’에서,붉은악마들의 ‘대∼한민국’함성 속에 어렵게 강연을 해야만 했다.이토씨는 한국팀 기적의 ‘끝’을 지켜본 뒤 일본 잡지에 칼럼을 써야 했기에 초초한 마음으로 ‘한국·독일전’을 TV로 지켜봤다고 했다.

◇박노자= 저는 본래 조용한 사람인데 응원단의 함성으로 머리가 두조각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어요.응원도 좋지만 ‘남의 공간’까지 침해해도 되는 건지….

◇이토= 한국 언론에서 ‘4800만이 하나가 되어서’라면서 일체감을 거듭 강조하기에 일본은 언제 이런 일체감을 느꼈을까를 따져 봤어요.1964년 도쿄올림픽 때도 아니었고.제 어머니께서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겼을 때와 비슷한 풍경일 거라고 했어요.메이지유신(1867년)후 30여년 만에 ‘서양에 이겼다.’면서 온 일본국민이 붉은 연등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열광했다고 해요.

◇박노자= 동양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오늘의 한국에서 그때를 떠올릴 겁니다.당시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는 신문에 “이제 서양국가를 패준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국가처럼 됨)’가 됐다.”고 환호했죠.1853년 미국함대에 굴욕을 당해 개방을 한 일본이 러일전쟁 승리에 환호한 것이나,이번에 한국인들이 보여준 뜨거운 열기의 이면에는 ‘서양(팀)을 이겨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콤플렉스가 작용했다고 봅니다.그후 일본 메이지 정권이 국민의 열광(애국심)을 통제하고 휘몰아서 군국주의로 치달은 것은 한번쯤 되짚어 볼 일입니다.

◇이토=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좋아할 일이 없었으면 축구경기에 그렇게 열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대구에서 한·미전을 할 때 저도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함께 응원했지만,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응원을 하면서 왜 이렇게 좋아할까,의문이었어요.그렇다면 그 흐름에서 떨어져 있고 싶은 개인은 어떻게 해야할까,과연 이 사회가 수용해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박노자=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고 해서 민족적 콤플렉스가 해결될까요?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은 ‘독립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신문에서는 “대한제국이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되려면…”이라고 계속 언급하지요.한국의 민족주의는 어찌 보면 다른 나라를 억압하거나 이기는 것이 아니라,동등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그러나 현시대 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억압하거나 억압받거나 할 뿐이지 동등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한국이 제3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또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주의처럼 제3세계를 억압하는 다국적 자본이 될 수는 있지만 동등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토= 일본은 ‘입구'(入歐·서양화)한 건가요?

◇박노자= 일본은 부분적으로 ‘입구'했습니다.제3세계에서 노동력을 착취해 부를 쌓는,또 전형적인 20대80의 신자유주의적인 국가가 됐죠.중국은 노동자들을 통해 국가는 엄청난 부를 쌓지만 일본인의 실업률은 꾸준히 높아지는 것이 그걸 말합니다.일본 국가(자본)의 성공이 반드시 일본 국민 전체의 성공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거죠.

◇이토= 맞아요.30년전과 비교하면 일본의 국민소득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국민이 옛날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아요.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고 싶어하지만 그 따라잡아야 하는 요소가 경제성장은 아닌 것 같아요.‘일본을 닮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박노자=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은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를 억압한 일본을 닮지 않으면 일본에 잡아먹힐 것이라는 압박감이 있습니다.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닮도록 돼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민족주의가 기형적이었던 만큼 그걸 보고 배운 한국의 민족주의도 기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토= ‘4800만이 하나가 돼서 기쁘다.’는 말을 들으면 한국인들이 지금껏 하나가 되지 못해서 불행하다고느꼈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그러나 과연 ‘하나’가 됐을까요?

◇박노자= 축구를 통해 형성된 ‘축제의 시공간’과 ‘일상의 시공간’이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월드컵 응원을 하면서 영·호남이 하나가 됐다고 느꼈겠지만,월드컵기간에 치른 ‘6·13’지방선거의 결과는 영남당과 호남당으로 다시 나뉘지 않았던가요?

‘붉은악마’덕에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죠.그러나 레드 콤플렉스는 이념의 문제고,북한과의 관계입니다.앞으로 마녀사냥식의 빨갱이 논쟁이 조금 수그러들 수는 있겠지만,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한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한 거 아닐까요.지금 한국민들이 느끼는 ‘하나’의식은 일시적 망각,일시적 허위의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토= 그래도 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이웃’의 존재를 ‘우리’로 껴안고 확인한 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제 한국인 친구의 고교생 아들은 “아빠,이제 이민가지 말고 여기서 살자.”고 했답니다.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것은,한편 슬프기도 하지만 좋은 일 아닌가요.

◇박노자= 나는 지역주의나 분단의 아픔이 ‘동질성의 확인’이 아니라 ‘이질성의 인정’에서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개인의 차이뿐 아니라,체제의 차이를 서로 인정할 때 남북 통일이 되지 않겠어요? 단일성을 강조하다 보면 상대에게 배타적으로 됩니다.

◇이토= 한국이 약소국일 때는 ‘민족주의’가 다른 국가나 민족에게 피해를 주지않겠지요.그러나 세계에서 교역 규모가 12위인 한국은 더이상 약자가 아닙니다.한국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제국주의처럼 다른 국가와 민족을 착취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박노자= 그렇죠.유럽의 변두리 국가들이 갖는 소외의식도 한국인의 피해의식 못지 않습니다.이번에 이탈리아팀이 한국팀에 패하자,이탈리아에서 FIFA에 전자우편 40만통을 보내 서버를 다운시킨 걸 보면 그들의 소외의식이나 피해의식을 짐작할 만하지 않겠어요?

◇이토= 한국인이 지난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종목에서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6개월간 분개하다가,이번에 이탈리아팀이 심판의 오심을 지적하자 태도를 바꿔 ‘쩨쩨하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한국에서 계속 이탈리아를 몰아붙이면 그 곳에 사는 교포들이 괴로워진다는 점도 유념해야죠.

◇박노자= 25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지고도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정말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유럽에서 축구는 국가간의 ‘예비전쟁’이나 마찬가지여서 폭력사태가 반드시 일어나거든요.한국에서는 통제사회의 잔재와 유교문화에 교화된‘손님치레’가 잘 반영된 것 같습니다.

◇이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4강까지 올라가 아시아인을 하나로 묶은 것도 잘한 일이죠.대구에서 한·미전을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스리랑카 근로자들을 만났습니다.모두 빨간 옷을 입고 “아시아인이니까 16강에 진출한 한국·일본을 응원한다.”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박노자= 한국인들이 이번 월드컵을 ‘일상적인 국제성’‘시민의 얼굴을 한 민족주의’를 성취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국적과 얼굴 생김새를 상관하지 않고‘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토= ‘일상적인 국제성’이라는 것은 뭔가요?

◇박노자= 한국인 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강한 배타성을 보입니다.제가 보기엔 ‘관제 민족주의’의 유산인데,이것이 한국사회와 노동운동의 성숙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죠.내·외국인에 상관없이 근로조건은 개선돼야 하겠죠.그런데 한국인은 제3국에서 온 노동자들을,선진국에서 그랬듯이 가혹하게 대합니다.개인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돼야 건강합니다.‘잘못된 일을 외국인이 당하니까’하고 모른 척 하면 안됩니다.러일전쟁이후 일본이 제국주의화할 때 가타야마 센(片山潛)이 러시아의 플레하노프와 ‘사회주의적 연대’를 주장한 것은 국제적으로도 좋은 연대이자 관행이었습니다.

◇이토= 저도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좋습니다.한국사회는 이번에 축구선수들에게 열광했는데 그전까지는 별로 존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한국은 공부 잘하는 사람만 대접받잖아요.제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대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박노자= 개인으로 태어나서 개인으로죽는데,국가니 민족이란 색안경을 쓰고 그것에 연연하면 시력만 나빠지죠.

◇이토= 한국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요번에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의 8강·4강 진출을 진심으로 응원했어요.한국이 4강에 나아갔을 때 일본에 계시는 어머니와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전자우편을 보낼 정도였죠.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이 터키에 져서 8강 진출이 좌절되자 좋아했다는 보도를 보고 일본의 제 친구들은 정말 섭섭해 했어요.

문소영기자 symun@
2002-06-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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