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취화선’ 새달 10일 개봉

임권택 감독 ‘취화선’ 새달 10일 개봉

입력 2002-04-30 00:00
업데이트 200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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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이 오원 장승업이란 물감을 풀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다들 그게 인물화가 되겠거니 여겼다.그러나 최근 시사회장에서 두루마리를 푼 스크린은 차라리 풍속화,시대화에 가까웠다.

개인을 형성하는 시대의 요철을 밋밋하게 뭉개면서 한 천재화가의 개인적 드라마를 돋을새김하는 인물화하곤 거리가 있었다.오원의 예술혼은 구한말이란 베틀 속에 먹여지는 여러 실 가운데 가장 아기자기한 올이었다.예술과 시대,예술과 일상이 극도로 일기불순한 하늘처럼 간단없이 스파크를 일으키는 영화,‘취화선’이 다음 달 10일 극장가에 걸린다.

화면 가득 확 풀린 먹물이 일순 개이더니 선경인 양 돌아앉아 산을 치고 있는 사내가 오원(최민식).이윽고 카메라는 그의 어린 시절로 줄달음쳐 예술의 뿌리부터 냅다 훑어내린다.

비렁뱅이 고아 승업에겐 핏속을 철철 흐르는 환쟁이의 끼가 축복이고 또 천형이다.일찌감치 그를 알아본 개화파 선비 김병문(안성기)이 거두려하나,방랑의 역마살을 타고난천재를 사대부가 담벼락이 가둘 수는 없는 일.김병문과의인연은,승업이 삶의 매듭들을 하나씩 지을 때마다 번번이되돌아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로만 그치지 않는다.기둥 줄거리를 삼킬 듯 쏟아지는 인물들의 홍수속에서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둘의 조우는 카메라의 중심을 잡아주는삼발이이기도 하다.

외세가 조선을 한 뼘이라도 더 집어삼키려 으르렁대던 19세기 말.출신을 넘나드는 천재 화가라서 시대의 파란도 쉽게 넘나들까.명성을 박차고 “(세인의 평에) 발목 잡히면영원히 놀아나는 거야.”라며 괴나리 봇짐을 꾸리는 화가.허나 그를 편한 방에서 등떼미는 손길 하나가 갑신정변,동학혁명 등 불순한 날씨처럼 요동치는 시대라는 걸 감독은말하고 싶어 한다.

개인을 뛰어넘는 시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개인의 예술혼이 전기의 음과 양처럼 맞부딪히는 영화는 거대한 기획을 요구한다.이 거대 스케일의 시대화,풍속화에는 우리 시대의내로라는 일가들이 힘을 보탰다.

한국화가 김선두가 오원 화폭 80여점을 재현,묵향을 피울때 정일성 촬영감독은 우리 국토 깊숙이 렌즈를 들이대 단아한 사계를 찍어올렸다.도올 김용옥의 박식이 난무하는대본은 국립국악원의 호젓한 정악연주에 버무려진다.

‘롱테이크(오래 찍기)’를 즐겨써온 감독이 이번엔 유난히 끊어찍기로 선회한 것은 관객의 스피드 식성을 의식한것만은 아니다.

개인사의 잔잔한 여울이 아닌 역사의 폭포를 파노라마로담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그런 화면에서 여러 부문의 쟁쟁한 일가들이 내공을 겨루다 보니 관객들은 숨이 가빠지기 쉽다.지긋이 걸터앉아 완상할 여백이라도 한 자리 있었으면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화선’은 신선하다.죽끓듯 변해가는 영화계 프레임 안에서 예술과 역사를 얽어짜는 굵은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만인가.칸 영화제도 그걸 알아보고 일찌감치 본선무대로 불러올리지 않았던가.쉽사리 감정선을내비치지 않는 ‘취화선’을 온전히 즐기려면,값비싼 보약을 먹을 때처럼 느긋해지는 법을 알아야 하리라.

손정숙기자 jssohn@
2002-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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