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당익 뛰어넘는 큰 정치를

[대한광장] 당익 뛰어넘는 큰 정치를

이덕일 기자
입력 2001-06-09 00:00
업데이트 200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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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점령한 일본은 영속적 지배를 위해서는 한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비하하도록 만들어 저항의지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고,그 도구로 이용한 것이 당쟁(黨爭)이었다.

필자는 한말의 학자 이건창(李建昌)이 저술한 당의통략(黨議通略)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조선의 정당정치에 대한 반성적 전망이 담긴 이 책에는 당화(黨禍)라는 말은 나와도 당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그러나 일인 히데하라(幣原)가 1907년의 조선정쟁지(朝鮮政爭志)에서 이 책을 조선 정치의특징을 당쟁이라고 규정짓는데 이용하면서 이 책의 성격은물론 조선정당사의 성격까지 변질시켜 버렸다.그는 조선의정당들을 “주의(主義)를 가지고 존재하는 공당(公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사당(私黨)”이라고 규정했고,심지어 호소이(細井)는 “조선인의 혈액에는 특이한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파싸움이 계속되었으며 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라고까지 극언했다.

해방 이후 조선의 당쟁은 봉건적 당쟁이 아니라 군주정치아래에서 각 붕당이 서로 상대방을 비판,견제하는 근대 정당정치의 측면이 담겨있다는 긍정적 역사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당쟁망국론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우리역사 죽이기 차원이 아니라 우리역사에대한 애정에 기초한 진정한 반성이란 측면에서 조선 당쟁은오늘의 당쟁을 평가하는 거울로 다시 볼 필요가 있겠다.조선 당쟁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이에 기초한 무차별적인 정치보복이라는 부정적 모습 또한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조선 후기 들어 이들은 서로 자신들은 군자들의 당인 진붕(眞朋)으로,상대당은 소인배들의 당인 위붕(僞朋)으로 규정지어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했고,그결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심한 정치보복이 자행되었다.이들은 당익(黨益)을 국익(國益)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으나 그들의 당익은 사익이자 나라라는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에 불과했다.

해방후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룩되었으나 우리 정당들은 아직 조선 후기를 연상시키는 극심한 당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비극적인 것은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유용에서 보듯 당익을 위해서라면 국가라는 공동체 질서의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자신들의 당사가 ‘여의도’에 있는지‘마포’에 있는지를 놓고 싸우는 모습은 3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시골에 은거해 정국을 좌지우지하던 송시열과 이를비판하는 젊은 소론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해서 실소를 자아낸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지금 안기부 예산 절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소집하거나 자신들의 당사가 ‘여의도’에 있는지 ‘마포’에 있는지를 놓고 싸워도 좋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현재 우리사회는 의사들의 집단파업이나 대우 일부 노조원들의 미국 GM사 앞 시위가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짓도서슴지 않는 집단이기주의 시대다.

이러한 때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법의 존엄성이란 테두리내에서 이익집단들의 요구를 통합 조정해 공익에 복종하도록 해야하는데 정치권 자신부터 당익을 국익의 우위에 놓고 있으니 한마디로 말발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가 히데하라나 호소이 같은 일본인 식민학자들의 역사비하 발언에 분노할 수 있으려면 우리 정당들의 당쟁이 사익 챙기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현재각당의 당인(黨人)들조차 현재 자신들이 펼치는 당쟁이 사익챙기기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사익과 당익을 뛰어넘어 난국과 맞서 싸우는 큰 정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한 서생의 철없는 바람일 뿐일까?[이 덕 일 역사평론가]
2001-06-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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