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이제는 異文化 적응시대

[여성 선언] 이제는 異文化 적응시대

한비야 기자
입력 2000-01-20 00:00
업데이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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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객관적인 국제화 지수는 얼마나 될까? 지난 연말 한 방송국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스스로 중상위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이 평가의 국제화부문에서 조사대상국 46개국 중 우리나라는 46위,꼴찌라는 결과가 나왔다(1998년 통계이고 조사대상은 OECD에 가입한 경제 선진국과 20여 개도국이 섞여 있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기준이 되기에 그런 형편없는 결과가 나왔을까? 이 기관에서 사용한 국제화지수의 주요 지표는 우선 정보의 수집과 운용력이었다.

이거라면 최하위일 리가 없다.인터넷 사용 인구만도 1,000만명이 넘었다는데.다음은 영어를 포함한 국제어 사용능력.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읽기,듣기도 포함된다니 말이다.그런데 세 번째 지표를 보고는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졌다.이문화(異文化) 적응력! 여기에서 우리는 바닥점수를 면치 못한 것이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그러나 이미 국제화를 가름하는 데 결정적인지표가 되고있는 ‘이문화 적응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다른 문화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과 능력이다.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도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문화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배타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외국인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화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한거의 유일한 나라,유수한 다국적 기업들조차 가장 적응하기 힘든 나라가 바로 한국이란다.

왜 그럴까?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다양한 문화의 경험이 없고 오랫동안 그 동질성을 강조하며 살다보니 다른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가 어려웠다.학교나 가정에서의 이문화 교육이나 훈련 또한 전무하여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눈높이’ 관계를 갖는데 아주 서투르다.그때문에 경제 선진국 문화에 대해서는 열등의식을,후발국에게는 우월의식을 보이며 ‘주눅’과 ‘거만’ 사이를 널뛰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우리 이문화 적응의 현주소이자 한국의국제화수준을 최하위로 끌어내리는 실체다.

국제화가 이미 국가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린 오늘날,우리는이런 ‘이문화 적응장애’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다행히 해결이그렇게 어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이문화 적응력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계여행 초기,인도에서의 일이다.한 시골동네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휴지가 동이 나버렸다.무엇보다 화장실 가는 일이 곤란했지만 그곳 풍습은 물로뒤처리를 하는 곳이라 동네에서 휴지를 구할 수가 없었다.며칠간 손수건이나 공책 등을 찢어 쓰다가 더 이상 견딜수 없어 붕대를 샀다.약사는 어디를 다쳤길래 이 많은 붕대가 필요하냐고 물었다.화장실 휴지 대용이라고 하자 딱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아가씨,손에 죽이 묻었다면 그걸 휴지로 쓱 닦는다고 깨끗하겠어요? 물로 싹 씻는 것이 깨끗하겠죠?” 내가 인도사람들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아저씨는 나를 포함한 문명인(?)들을 감히 깨끗지 못한 사람으로 여긴 거다.나는 이 일을 통해 다른 문화를 대할 때 가져야 할 두가지 중요한 마음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하나는 문화에는우열이 없다는 것.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또 하나는 어떤 문화든 그 나름의 논리와 까닭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생각 덕분으로 나는 7년간 세계 오지여행을 하면서 매일같이 겪게 되는 낯선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을사귈수 있었다.

국제화란 울타리가 없어진 지구촌에서 서로 다른 이웃들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며,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다.이문화 적응력이 국제화수준의 주요지표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올해는 서기 2000년.세기도 바뀌었는데 이제 우리 중상위권은 그만두고라도 꼴찌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비야 오지여행가
2000-01-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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