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노약자석에 앉을 권리

[굄돌] 노약자석에 앉을 권리

김미경 기자
입력 1999-11-11 00:00
업데이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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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한 눈에 들어오는 표시가 있다.‘노약자석’이 바로그것.아마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아닐까 싶다.우리의 노인에 대한 배려는 정말 남다르다.또한 노인들도 이를아주 당연시 여겨 오히려 양보를 안하는 젊은이들에게 과감히 호통 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또 다른 '약자'인 어린이와 동반여성에게도 같은 강도로 배려하고 있는가.

며칠 전에 매우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한 새댁이 어린아이를 이끌고 아이용품이 가득 든 듯한 가방들을 둘러 메고 탔다.그 아이는 어른들 틈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 보였고 새댁은 더워하는 아이의 옷을 벗겨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부피가 큰 가방들을 주체 못해 연신 땀을 쏟고 있었다.마침 ‘노약자’석이 비어 그 자리를 권하자 새댁은 주저하며 말했다.“거기는 노약자석이쟎아요.이제는 아무나 거기에 못 앉는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 할아버지가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며,“암,힘든 노인네들이 앉아야하구말고. 새댁은 젊었쟎수.아침부터 아이 끌고 어디 돌아다녀.복잡한 출근시간에는 집에 좀 붙어 있지”하셨다.

사실 법적으로는 똑같은 노약자였지만 상황으로 보았을 때에는 새댁과 아이가 훨씬 힘들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는 커녕 이동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은,본인은 ‘노인’으로서 존중돼야 하고또 다른 ‘약자’는 한껏 무시해도 좋다는 태도였다.물론 이 한 예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노약자’의 개념이 유교문화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는 ‘약자’보다는 ‘어른’대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아가 ‘남자노인’은 당당하게 대접 받기를 원하고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여자와 어린이’는 더욱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 이 가을에 쓸쓸함을 더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김미경 펄벅재단 한국지부 대표]

1999-11-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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